인터뷰어: 김세린, 권수진
현장 촬영: 권수진
사진 제공: 조열음
페디소 인사이드는 디자이너 눈에만 보이지만, 알고 나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페디소 인사이드]를 통해 실무자의 입장에서 프로젝트를 깊이 있게 살펴보고, 작업 과정의 뒷이야기도 들으며 디자이너의 역할과 관점을 엿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페디소 인사이드’ 세 번째 주인공은 조열음 디자이너입니다. 조열음 디자이너는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브랜드의 니즈에 따라 아이덴티티, 그래픽, 패키지, 인쇄물, 패턴 등의 다양한 매체에 컨셉을 풀어내는 일을 합니다. 의류 브랜드 로우클래식에서 4년간 근무했고, 현재는 코스메틱 브랜드 탬버린즈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PART 1. LOW MUSEUM 아이덴티티 (2017)
Q. 〈LOW MUSEUM 아이덴티티〉 작업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LOW MUSEUM 아이덴티티〉는 런웨이쇼 형식이 아닌 ‘뮤지엄’이라는 테마로 진행된 로우클래식 17FW 콜렉션을 위한 작업으로 로고, 초대장, 포스터 등을 포함한 프로젝트의 아이덴티티를 디자인했습니다.
Q. 17FW 컬렉션은 전시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선보였는데,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보통은 서울패션위크의 런웨이 쇼에서 모델이 워킹하는 식의 일반적인 쇼의 형태로 콜렉션이 진행돼요. 사실 로우클래식에서 이전에도 패션위크에 참여하지 않고 학교를 콘셉트로 중앙고등학교를 대관해 쇼를 한 적도 있고, 런웨이를 다르게 해보려는 꾸준한 시도가 있었어요. 길게는 세 달에서 짧게는 한 달을 준비하는 쇼가 10분 만에 끝나는 것에 대한 이명신 디렉터님의 회의감도 있었고요.
이 뮤지엄 콘셉트는 디렉터가 티노 세갈(Tino Sehgal) 이라는 작가에게 개념적 영감을 받아서 시작됐어요. 티노 세갈은 주로 무용이나 설치 작업을 하는데, 예를 들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무용수 둘이 명화 속의 키스 장면을 반복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그것을 녹취, 영상, 도록 등의 그 어떤 기록으로도 남기지 않음으로써 그 순간, 그 장소에 있는 사람만 향유할 수 있는 작업을 하는 식이에요. 그런 부분에서 개념적으로 영감을 받아서 패션쇼도 로우클래식의 쇼피스를 입은 모델들이 설치 아트웍과 함께 어우러지는 전시 형식으로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어요.
Q. 프로젝트의 대략적인 과정이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쇼를 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가 뮤지엄 테마로 콜렉션을 진행하는 것이 급하게 결정되어서 디자인 작업은 5~6주 정도 소요했던 것 같아요. 제작 기간을 제외하고 실제 디자인은 4주 정도 작업했어요. 나머지는 제작하는 데 시간을 썼어요. 이 시기에 내부에 그래픽 디자이너가 2명이었어요. 프로젝트 하나를 나눠서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이번엔 누가 맡아서 하자’ 이런 식으로 PM을 번갈아 가면서 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선배가 저에게 PM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셔서 제가 전체 디자인을 담당했어요. 리플릿만 동료분이 도움을 주시고요.
초대장 구성
Q. 짧은 시간 안에 진행되어야 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풀어가겠다’라는 비주얼 콘셉트가 중요했을 것 같아요. 〈LOW MUSEUM 아이덴티티〉의 비주얼 콘셉트는 무엇이었고, 어떻게 구체화하셨나요?
패션 브랜드가 만든 ‘뮤지엄’은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포괄적이긴 하지만 ‘뮤지엄' 그 자체를 콘셉트로 정했어요. 실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를 보러온 듯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초대장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도 전형적으로 보이도록 디자인했어요. 패션 디자인 업계와 그래픽 디자인 업계에서 사용하는 문법이 다르기 때문에 전형적인 전시 디자인 문법을 참고하면 런웨이쇼와 효과적으로 차별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초대장은 티켓과 아크릴 명찰로 구성되었는데, 티켓의 경우 빈티지한 무드의 옛날 티켓을 많이 살펴봤어요. 브랜드 성격에 맞춰 덜어내긴 했지만, 줄줄이 연결된 티켓이 뜯길 때의 형태라던가 사용된 문구 등의 디테일을 참고했어요. 아크릴 명찰도 뮤지엄에 관계자가 목에 거는 출입증처럼 보이게 디자인했어요.
MoMA같이 큰 뮤지엄을 보면 심볼 같은 것이 따로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이번 콜렉션을 위한 뮤지엄 심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기존의 로고를 쓰면 이전과 크게 다르게 보여주는 면이 없어서, 뮤지엄을 위한 새로운 심볼 로고를 만들었어요. ‘로우클래식’의 L이랑 C를 겹쳐서 도장 같은 형태로 만든 심볼이에요. 이 심볼을 활용해서 전시 기념품 컨셉으로 스카프, 에코백, 모자 등의 상품을 제작하기도 했어요.
초대장 디테일
Q. 옷에 사용되는 로고 태그를 종이봉투와 함께 미싱 처리를 해서 마감한 초대장 봉투가 인상적이에요. ‘뮤지엄'이라는 콘셉트 안에서 티켓을 일반적인 종이봉투에 넣어서 구성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패키지함으로써 패션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놓치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셨나요?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미싱으로 마무리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방식을 자연스럽게 떠올렸고, 로고 태그를 활용하면 직관적으로 로우클래식에서 보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좋았어요. 처음에 인쇄 업체에 이런 방식이 가능하냐고 문의했는데 했는데, 완전 제본도 아니고 손이 너무 많이 가다 보니까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엔 다 수작업으로 진행했어요.
티켓 디테일
Q. 티켓의 왼쪽 상단에 스크래치가 있는데, 이건 긁으면 뭐가 나오나요?
‘자딩 시크릿(JARDIN SECRET)’이라는 단어가 나와요. ‘비밀의 화원’이라는 뜻인데, 이 콜렉션의 주제 단어였어요. 이런 숨겨진 요소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때 제가 2년 차였는데 이렇게 큰 작업을 맡은 게 처음이어서 욕심이 났었거든요. 그래서 가공도 이것저것 썼어요.
Q. 티켓도 그렇고, 봉투나 아크릴 명찰에도 여러 가공을 사용하신 것 같아요. 인쇄나 제작과 관련해 겪은 어려움이나 에피소드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티켓의 경우, 처음에는 광택 있는 종이인 ‘에어러스'를 사용했어요. 전시가 두 타임으로 나눠서 진행되어서 각각의 시간을 도장으로 직접 찍어줘야 했는데, 이 종이에는 도장 잉크가 하루를 말려도 스며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다른 종이로 변경해서 재인쇄를 했어요. 최종적으로는 ‘문켄’에 웜그레이 별색 1도로 인쇄해서 만들었어요.
아크릴 명찰
초대장은 600개 정도 제작했는데 개당 10,000원 내에 제작 단가를 맞춰야 했어요. 수량도 적고 예산도 큰 편이 아니어서 많은 부분을 수작업으로 진행했어요. 시장에 가서 발품도 많이 팔았고요. 아크릴 명찰이 단가가 높은 편이었는데, 그래도 디렉터님이 디자인을 마음에 들어 하셔서 그대로 진행했어요. 앞면은 음각한 뒤 잉크를 넣는 방식으로 제작했고, 뒷면은 실크 인쇄를 했어요. 처음 아크릴 업체에 갔더니 이런 식으로 음각에 잉크를 넣는 건 요즘엔 많이 하지 않는 방식이라며 안 한다고 했고, 업체를 찾기 위해 발품을 많이 팔았어요. 가공하는 업체를 찾아도 수량이 적다 보니까 이렇게는 못 해준다는 곳도 있었어요. 그리고 음각에 넣는 잉크 컬러 맞추는데도 어려움이 있었어요. 음각을 과도하게 깎으면 심볼의 두께가 의도치 않게 두껍게 나오기도 했고요. 그래서 아크릴 명찰은 샘플을 여러 번 뽑았던 기억이 있네요. 샘플을 제작하던 업체에서 원하는 표현을 잘 못 잡아내서 마지막에는 업체를 바꾸기도 했었어요. 명찰 끈을 알아보러 동대문에도 갔었어요. 다행히 패션 브랜드이다 보니까 거래 업체가 있어서 거기 직접 가서 요청했는데, 끈에 양면 인쇄를 해야 해서 이런 것도 다 직접 업체에 가서 소통하면서 정했어요.
Q. 아크릴 명찰은 ARTIST, STAFF, VISITOR, PRESS용으로 총 4가지로 제작되었어요. 각각이 색이 다 다른데요, 이 4가지 색을 선택하신 이유가 따로 있나요?
‘뮤지엄’ 콘셉트 자체가 티노 세갈에게 영감을 받았다면, 시즌 콜렉션의 컬러칩의 경우에는 에곤 쉴레에게 영감을 받았어요. 이명신 디렉터님께서 ‘자딩시크릿’이라는 시즌 테마 안에서 에곤 쉴레의 드로잉을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 색감만 사용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셨어요. 그래서 드로잉을 모자이크 패턴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했는데, 처음에는 해당 작업에서 발췌한 색깔, 예를 들어 민트색을 아크릴 명찰에도 사용하고자 했었어요. 하지만 이게 그 각각의 용도(ARTIST, STAFF, VISITOR, PRESS)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 않다는 내부 피드백이 있었고, 최종적으로는 직관적으로 색깔을 정했어요. ARTIST는 강렬한 빨간색, STAFF와 VISITOR는 로우클래식에서 자주 사용하는 검정과 흰색을 사용하는 식으로요.
전시 외부 촬영 사진
Q. 공간에 설치된 그래픽 작업물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행사 당일 전시장 외부에 거는 현수막과 배너 작업이 있었어요. 행사 당일에는 관람객들에게 3종의 포스터를 제공했는데, 해외에서 촬영해온 사진과 뮤지엄 로고 등을 활용하여 포스터를 작업했어요. 포스터는 전시 콘셉트보다는 브랜드 무드에 좀 더 맞는 작업이었어요.
Q. 〈LOW MUSEUM 아이덴티티〉를 위해서 로고를 만드셨잖아요. 로우클래식은 다양한 로고를 시즌 테마에 맞춰서 선보였던 것 같아요.
당시 계속 그런 식으로 작업했던 것 같아요. 초대장 봉투 태그 로고는 14SS 시즌에 이명신 디렉터님이 만든 로고에요. 이 로고가 브랜드랑 잘 어울려서 2017년까지 계속 썼었고, 2017년에 만든 ‘뮤지엄’ 로고 심볼도 나중에는 ‘museum’만 빼서 다른 곳에 사용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시즌 로고들이 혼용되는 상황이 아쉬웠어요. 그래서 브랜드를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심볼을 새롭게 개발하게 되었죠.
PART 2. LOW CLASSIC 심볼 (2019)
리뉴얼 로고 이미지
Q. 자연스럽게 새로 리뉴얼하신 심볼 이야기를 해볼까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시즌 테마 로고가 혼용되는 상황이 발생했어요. 14SS 로고의 경우는 형태가 복잡했기 때문에 인쇄하거나 자수를 넣을 때 구현도 어렵고, 견적도 많이 나오고, 사이즈도 제약이 많았어요. 반면에 뮤지엄 심볼을 변형한 17FW 로고는 너무 미니멀하다는 반응이 있었어요. 브랜드가 가진 색깔에 비해 조금 영(young)해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고요. 처음에는 14SS 로고를 단순화해서 사용하려고도 했는데 다른 브랜드에서 이미 월계수를 모티브로 한 로고를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차별점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고민하던 차에 이 계기를 통해 브랜드 로고를 리뉴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리뉴얼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Q. 프로젝트의 대략적인 과정이 궁금해요.
2019년 12월에 작업을 시작해서 한 달 정도 작업했어요. 원래는 같은 해 9월, 14SS 로고를 단순화하려다가 멈춘 상태에서 12월 초에 아예 로고를 리뉴얼하기로 했어요. 12월 말에 로고 작업이 끝났고, 1월 중순에 패키지와 애플리케이션에 적용하는 작업까지 마무리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모두의 숙원사업 같은 것이어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프로젝트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내부에서 많이 배려해주셨어요.
리뉴얼 로고 과정 스케치
Q. 로고 리뉴얼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었나요?
14SS로고보다는 단순해야 하고, 17FW로고보다는 디테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방향성을 가지고 작업에 착수했어요. 이런 의견을 고려해서 브랜드에서 추구하는 구조적인 형태를 사용하되, 클래식한 톤의 로고를 만들고자 했어요. 로우클래식의 L과 C를 활용해서 표현한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맥락을 이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예 모노그램으로 디자인해야겠다고 결정한 뒤, L과 C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스케치했어요. 처음에는 로우(LOW)의 W도 활용하는 방식의 스케치도 했었는데, 내부 회의를 통해 LC 정도만 활용하자는 방향으로 단순화되었고요. 그 후로는 ‘세리프를 네모나게 할까?’, ‘두께를 얼마나 줄까?’ 같은 식으로 디테일한 부분을 많이 생각했어요. 패션 브랜드이다 보니 로고를 자수로 표현했을 때 디테일이 잘 나오는지가 중요했어요. 그래서 자수로 테스트를 많이 했고, 자수로 표현했을 때 가장 브랜드의 무드를 잘 보여주는 시안이 최종으로 결정되었죠.
Q. 로고 작업은 브랜드가 가진 색깔을 압축적으로 담아내야 하는 작업 같아요.
네. 그래서 제가 로우클래식에서 근무하면서 느끼고 경험했던 브랜드의 성격을 로고에 녹여내려고 노력했고 브랜드가 가진 클래식한 톤을 녹여내고자 했어요. 형태적으로 로우클래식의 옷이 구조적이거든요. 그래서 로고에서도 그런 구조적이고 대칭되는 형태를 표현하고자 했어요.
Q. 로고의 세리프가 눈을 사로잡아요. 세리프끼리 만나는 부분이 인상적이에요. ‘반짝!’하는 느낌도 있고요. 이 로고를 만들면서 특별히 집중한 부분들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이건 제가 그래픽 디자인적으로 접근한 부분인데요, 보통 세리프 서체들이 오래된 서체들이 많잖아요. 로우클래식 자체가 초반에는 디렉터님도 20대 초반이었고, 브랜드의 타겟도 20대 초중반이었어요. 그래서 브랜드 자체가 미니멀하고 모던한 느낌에 가까웠다면,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브랜드 타켓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여성으로 넘어갔어요. 원래 디테일이 없는 산세리프 서체의 로고가 있었는데, 이게 현재의 브랜드 성격을 보여주기에는 약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현재의 브랜드를 잘 드러낼 수 있도록 로고에 디테일을 추가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서체의 세리프를 추가하면 맥락도 맞고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고, 세리프 모양을 어떻게 표현할지도 여러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리뉴얼 로고 자수 표현
Q. 패션 브랜드이다 보니까 종이에 인쇄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수 등 다양한 소재에 표현해야 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로고의 세리프를 많이 다듬으셨을 것 같아요.
세리프나 두께는 얇게도 해보고 두껍게 해보기도 하면서 여러번 다듬었어요. 처음에는 띄어져 있는 형태로도 표현했었는데 이 표현이 자수로 구현하면 뭉개져서, 최종적으로는 이어지는 방식으로 디테일을 메꿔서 수정했어요. 옷 위에 구현했을 때 어떻게 보일지를 고려해야 해서 세밀한 표현을 하는 게 어렵긴 했어요. 종이에 인쇄된 로고와 자수로 표현된 로고를 비교하면 자수로 새긴 로고가 여전히 조금 더 둔하게 표현되긴 해요. 아쉬운 부분이죠.
Q. 브랜드를 대표하는 심볼을 리뉴얼하는 작업이기에 내부에서도 의견을 많이 주고받았을 것 같아요. 피드백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여러 시안을 두고 어떤 시안이 브랜드랑 가장 잘 어울리는지 열다섯 명 정도 되는 직원 모두가 투표했어요. 시안 옆에 동그라미를 쳐가면서 제가 속했던 비주얼팀 말고도 의상디자인팀, MD팀, 샘플실 다 같이 이야기해서 정했죠. 두 가지 시안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의견을 나눴었어요. 개인적으로 제가 좋다고 생각했던 시안은 최종 결정 시안은 아니었는데, 패션 업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오히려 그 시안이 패션 브랜드 로고로는 많이 본 듯한 로고라는 의견을 주셨어요. 전문 분야가 조금 달라서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확실히 자수로 표현했을 때 최종 결정된 디자인이 더 완성도가 있어 보이더라고요. 디렉터님은 처음에는 최종 결정된 시안에 대해서는 약간 모르겠다는 의견이셨는데, 한 달 동안 계속 시안을 보시더니 정이 들어서 나중엔 두 가지 시안 중에 최종 결정 시안이 좋은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리뉴얼된 로고가 활용되고 있는 제품 사진
Q. 최종적으로 완성된 로고가 현재 브랜드에서 잘 활용되고 있어요. 리뉴얼된 로고를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당연히 아쉬운 마음이야 있고, 디테일을 손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워요. 이 작업을 할 때 예정된 촬영 스케줄 전에 완성되어야 한다는 마감 기한이 있었거든요. 한 브랜드의 로고를 바꾸는 건데 짧은 시간에 후다닥 작업해도 되는 걸까 싶긴 했어요. 시간이 부족해서 당시에 로고와 관련된 가이드라인 작업까지는 못했어요. 이후에 제가 이직을 하게 되는 바람에 마무리 짓지 못했죠. 그 점이 조금 아쉬워요. 더 손볼 것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웃음). 그래도 리뉴얼된 로고가 잘 사용되고 있는 것 같아요. 퇴사한 뒤에 새롭게 오픈된 시즌을 살펴봤는데, 가방 지퍼나 벨트에도 로고가 사용되고. 잘 사용되고 있는 걸 보니 뿌듯해요.
PART 3.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한다는 것에 대해
Q. 로우클래식 인하우스 디자이너로서 어떤 업무들을 담당하셨나요?
제가 있던 팀이 비주얼팀인데, 비주얼팀은 의상이 아닌 나머지 시각적인 부분을 다 담당해요. 티셔츠 그래픽 디자인, 룩북 같은 인쇄물, 윈도우 그래픽, 모델 서칭이나 사진 촬영 컨셉 같은 것도 같이 보조하기도 했고, 사진 보정도 하죠. 웹사이트나 SNS 관리도 저희 팀이 했어요.
Q. 인하우스 디자이너시다 보니 클라이언트 없이 내부에서 모든 것을 진행하실 것 같은데 시안 작업과 피드백, 최종 결정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팀 같은 경우에는 규모가 작아 바로바로 피드백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업무 담당을 정할 때도 회의를 통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거 하고 싶은데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럼 언제까지 작업할까요?’ 이런 식으로 정한 경우가 많아요. 피드백도 실장님과 모니터 옆에 앉아서 직접 소통을 하며 바로 결정하곤 했어요. 인하우스의 규모가 작아서 그랬는지, 다른 규모가 큰 인하우스는 많은 결재를 통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시안이 바뀌어서 내려온다거나 소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는 거의 반대였던 것 같아요.
Q. 회사에 패션 디자이너가 많을 것 같아요,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와 어떤 방식으로 협업이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협업 방식은 시즌별로 차이가 있었어요. 아무래도 옷이 브랜드의 핵심 요소이다 보니, 의상 디자이너분들의 명확한 방향 제시가 있었던 적도 있고, 어떤 시즌은 초반 리서치부터 비주얼팀이 함께 준비하면서 협업하기도 했어요.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분들과 소통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서로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 생기는 차이는 있었던 것 같아요. 비주얼팀은 그래픽의 완성도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반면 의상 디자인 팀은 완성도보다는 스타일에 대한 의견을 주시는 경우가 많았어요. 실장님이랑 이야기 나눌 때도 아무래도 의상 전공이시다 보니 디테일한 부분보다는 전체적인 톤앤 매너라던지 무드의 통일성에 대해 먼저 고려하셔서 선택의 기준이 조금 다른 느낌이었어요. 이런 방식의 의견 차가 있었는데, 점차 서로의 전문 분야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래픽 부분은 저에게 많이 맡겨주셨어요. 물론 100% 제 의견이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제가 강하게 어필을 한다거나 의견을 내면 많이 들어주셨던 편이었어요.
Q. 한 브랜드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인하우스 디자이너로서 브랜드를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SNS 관리를 저희 팀에서 직접 해서 댓글이나 올라오는 게시물 등 고객들의 반응을 많이 참고했어요. 주변에 이 브랜드를 소비하는 친구들에게 이야기도 듣고 기사를 보기도 했어요. 특히 MD 팀의 피드백이 굉장히 도움이 되었어요. 고객들이랑 소통하는 파트를 맡고 계셔서 그분들의 의견을 많이 참고해서 작업한 것 같아요.
Q. 패션 업계 자체도 그렇고, 브랜드의 특성도 그렇고 늘 정신 없으셨을 것 같아요. 이런 상황 속에서 느낀 아쉬운 점이나 스스로 터득한 관점 같은 게 있으신가요.
인턴 할 때는 다 잘하고 싶고, 욕심도 많고 모든 것을 다 열심히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스케줄이 안 되는데 업무량이 많을 때는 스스로 우선순위를 부여해서 조절했던 것 같아요. 규모나 브랜드 내부에서 중요도가 높은 프로젝트에는 시간을 많이 쏟고, 단순 작업은 조금 힘을 빼는 식으로 나름의 에너지와 시간 분배를 해서 일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아쉬운 부분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브랜드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데, 시즌이 계속 돌아가다 보니까 시간이 부족한 거예요. 패키지도 리뉴얼하고 싶고, 웹사이트도 수정하고 싶고. 맨날 팀원분이랑 나중에 시간 생기면 웹사이트 리뉴얼 꼭 하자 이런 식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목록화해서 적어놓기도 했어요. 그래서 퇴사 전에 웹사이트 리뉴얼했어요!
Q. 입사 전 평소 애정이 있던 브랜드였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이 브랜드 알게 된 게 대학교 1학년 때인데, 그때 신진 디자이너 붐 같은 게 일어났어요. 목동 현대백화점 팝업스토어에 갔다가 로우클래식 옷을 샀었어요. 대략 10만 원을 썼는데, 그때는 학생이니까 손을 벌벌 떨면서 이거 사도 되나 하면서 샀어요. 그때 처음 이 브랜드를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로우클래식의 옷이 좋아서 관심 있게 보고 있었는데, 마침 보그걸 잡지에서 방학 인턴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어요. 그때는 그냥 좋아하는 브랜드니까 지원해봐야지 했는데 면접까지 보게 된 거죠. 원래는 패션 인턴을 뽑는 자리었는데 패턴 작업을 같이해볼 수 있겠다 해서 절 뽑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시장 가서 스와치도 해오고, 초반에는 패션 쪽 보조 일도 조금씩 했어요. 여름 시즌에는 티셔츠 그래픽을 만들고 이후에는 그래픽 위주로 일했어요. 1~2달짜리 인턴이었는데, 마침 휴학을 해서 그 이후 2월부터 7월 말 정도까지 일했어요.
Q. 최근에 로우클래식에서 탬버린즈로 이직을 했다고 들었는데 원래 알고 계셨던 브랜드였나요?
탬버린즈도 좋아하는 브랜드였어요. 이런 부분은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로우클래식은 시즌에 따라 컨셉이 변하는데 시즌에 맞춰 디자인하는 과정이 브랜딩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브랜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로우클래식에서 꽤 오랜 기간 일을 하면서 스스로 비슷한 작업만 반복하고 있다는 매너리즘을 느꼈고, 아무래도 옷이 주력인 브랜드이다 보니 그래픽적으로 한계가 있었어요. 종이도 다른 것을 써보고 싶고 택에 달리는 끈 같은 것도 더 신경을 쓰고 싶었는데, 정해진 예산 안에서 옷의 중요도가 훨씬 높다 보니 원하는 디테일을 다 구현할 수는 없었어요. 탬버린즈는 패키지 디테일에 있어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아 좋아 보였어요.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걸 디자인하는 사람을 누굴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탬버린즈 패키지 이미지
Q. 옷이 주 메인인 브랜드에서 작업하시다가 화장품이 메인인 곳에서 작업하시고 계신데, 어려우셨던 점이나 새로 발견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완전히 달라요. 저도 화장품을 쓰지만 이렇게 제한 사항이 많은지 몰랐어요. 로우클래식에서 일할 때의 제약은 예산과 관련된 경우가 많아서 내부 인력이 수작업하는 식으로 해결했었는데, 화장품은 그렇게 해결하기는 어려운 점이 많아요. 법적으로 정해진 필수 표기 사항이나 소재 등에서 선택의 제한도 있고요. 인쇄를 할 수 없는 영역도 있고 제약이 많아요. 처음엔 안되는 게 너무 많아서 힘들었어요.
Q. 로우클래식과 템버린즈 둘다 업계에서 다른 지점이 있는 브랜드인 것 같아요. 조금 거시적인 질문인데 열음님께서 속해있으면서 탬버린즈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신가요?
로우클래식의 경우, 처음에 신진 디자이너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해서 브랜드를 좋아하게 되었고 여러 브랜드와의 협업이나, ‘로우마켓’과 같은 컨셉 등 차별화된 시도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탬버린즈도 일반적인 화장품 브랜드였다면 큰 관심은 없었을 것 같아요. 화장품 브랜드이지만 댄스 퍼포먼스나 플리마켓을 통해 제품 런칭을 하는 식의 독특한 행보가 차별화된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차별점이 있는 브랜드라 더 매력 있게 느껴진 것 같아요. 제가 이런 포인트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탬버린즈라는 브랜드가 디자인 업계에서는 인지도가 있지만, 아직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진 브랜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대중들의 니즈를 맞추면서 디자인적으로 실험적인 시도를 하려다 보니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고 어려워요. 그래도 이런 부분을 생각하는 게 스스로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해결해야 할 부분이지 않을까요.
Q. 인하우스 디자이너의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브랜드를 같이 키워가는 느낌으로 시간을 오래 두고 작업하다 보니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나 경험이 축적되어 점점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장점이에요. 내부에 파트장님이나 대표님이랑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정확하게 디렉팅이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고요. 소통해야 할 대상이 외부에 있는 경우보다 수월한 것 같아요. 단점은.. 음..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요? (웃음) 단점은 개인적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작업을 해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이미 정해져 있는 브랜드 컬러, 가이드라인이 있다 보니 범위를 벗어난 작업을 할 수가 없어요. 브랜드 입장에서는 브랜딩을 이어가기 위해 당연한 부분이어서 개인적인 아쉬움인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열음 님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열음 님을 홍보해주세요!
저의 장점은 다른 그래픽 디자이너분들에 비해 다른 물성이나 매체를 많이 써본 경험이 있다는 점이에요. 덕분에 그래픽이 패브릭이나 입체감이 있는 물성에 적용되는 모습을 상상하기가 쉬운 것 같아요. 기획부터 홍보까지 전체 프로세스를 경험했다는 점도 제 강점이에요. 보통은 기획이 다 완성된 상태에서 디자이너에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기획부터 참여해서 계속 소통하며 생산과 제작까지 해요. 또 웹과 SNS를 관리하고, 더 나아가 팝업스토어와 같은 사용자의 반응을 직접 보는 경험까지 함께해요. 프로젝트 전체의 과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디자인을 접할 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죠. 또 규모가 큰 작업이나 행사를 담당하고 진행해 본 경험도 장점인 것 같아요.
지인분들이 주최한 플리마켓의 포스터를 만들고 셀러로도 참여했었어요. 앞으로도 회사 일 이외에 소규모 브랜드들의 행사 그래픽 혹은 전시 그래픽이나 전체 브랜딩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앞서 말했던 다른 스타일의 작업을 해볼 수 없던 개인적인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도 재밌고 꾸준히 작업하고 싶습니다.
조열음님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yyeoleum
글쓴이 김세린
그래픽 디자이너.
아직은 여러모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오래오래 해먹는 건강하고 멋진 할머니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선 끈끈한 연대가 필수라고 생각하며 FDSC를 통해 적극 연대하고자 한다. 많은 동료들과 함께 멋진 할머니 디자이너가 되는 그날까지!
@serinww
글쓴이 권수진
꾸준히 지속하는 사람. FDSC를 통해 멋진 디자이너들을 알아가고 소개하며 연대하고자 한다.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으며, 프로젝트 그룹 개개인의 구성원이다.
@szin_0
책임편집. 이예연
편집. 하형원, 최지영, 노윤재, 김나영, 김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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