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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 동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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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SC ARTICLE
주제
멈춤
나는 입시 미술학원조차 놀러 다니는 못 말리는 녀석이었다. 최대한으로 떠들고 최소한으로 집중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림 한 장 완성하는 것이 목표인 학원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겠고. 하루 수업 4시간 동안 1장의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입시 미술학원에서 나는 늘 하위권이었다. 못 그린 그림보다 덜 그린 그림이 혹평을 받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입시에 대한 자각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 나란 녀석의 캐비닛에는 미완성 그림이 쌓여갔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하위 그룹에 붙어 평가받은 내 그림을 떼 캐비닛에 넣고 집에 가려는데, 분주한 분위기에서 당시 부원장으로 계시던 조인용 선생님이 스윽 삐져 나와 말을 걸었다.
“지인, 그거 집에 가져가서 완성해 와 봐”
“?”
“오늘 한 거 내일까지 완성해서 다시 가져와”
(지금 밤 10시인데, 지금부터 뭘 어떻게? 네?)
“다 채울 생각하지 말고 비어있는 곳을 디자인한다고 생각하고 네 기준으로 완성해와 봐”
“…네”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성격이지만, 또 동시에 누가 하라고 하면 꽤 순순히 해버리는 성격이기도 했던 나는 그렇게 공손히 대답을 하고 밤길을 터덜터덜 종이 한 장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방에 틀어박혀서 나머지 작업을 했다. 작업은 새벽 서너 시쯤 끝난 것으로 기억한다. 완성이라는 마음이 들 때까지 정말 초집중해서 종이를 채웠다. 아니, 정말 열심히 종이를 비웠다. 이 그림의 목표는 ―조인용 선생님의 말씀을 적극 인용하여― 채우지 않은 곳 즉, 하얀 종이 여백의 형태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었다.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었던 비례와 대비를 만드는 작업을, 채우는 쪽이 아니라 비워지는 쪽에 적용하면서 그림을 만들어갔다. 어쩐지 좀 신선한 기분이 들면서 예전보다 더 재미있게 작업이 되었고, 나도 드디어 완성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학원에 완성된 그림을 가져갔더니 선생님께서  그림을 액자에 넣어서 벽에 걸어 주셨다. 그 순간이 확실히 기억난다. 명예의 전당 같은 그 천장 밑의 높은 벽에, 검은 알루미늄 프레임의 유리 액자에 끼워진 내 그림이, 하늘 같은 선배들 그림 사이에 걸렸다. 그 엄청난 뿌듯함이 아직도 생생히 느껴진다. 새벽까지 집중하며 즐거웠던 그 밤을 만들어 준 선생님의 힌트 “빈 곳을 디자인한다고 생각해”는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지표와 같은 한 마디가 되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디자인 프로세스를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는 때가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시안을 만들어놓고 묵혀놨다가 며칠 후에 다시 꺼내 보는 순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디자인 시안도, 네이밍 시안도, 모든 글과 그림은 뭐든지 간에 형태가 잡히고 양이 채워지면 잠시 손을 뗀다. 계속 더 집착하고 싶어질 때 손을 뗀다. 그리고 최소 24시간 정도는 그대로 덮어놓고 들여다보지 않는 시간을 가진다. 만약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거나 간격을 더 늘리는 것도 좋다. 만들고 묵히고 수정하고 묵히고를 반복하는 것인데, 이 묵히는 시간에는 디자인과 전혀 상관없는 모든 활동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잠을 자고, 개와 산책하고, 친구와 떠들고 놀고, 드라이브를 하고. 시안일랑 전부 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전혀 상관없는 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리적으로 시안에서 멀어지는 장소 이동도 좋다. 시간과 공간의 거리감을 한껏 두는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떨어져 있다가 다시 시안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드디어 묵혔던 시안을 꺼내 보는 그 때가, 나는 이 순간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오랜만에 시안을 만나면 참 반가운 기분이 든다. 막 반가우면서 마음이 더 간다. 이런저런 반갑고 애틋한 마음이 솟으면서 지금부터 뭘 해야 할지 확실하게 알게 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작업하는 동안에는 전혀 감지할 수 없었던 전체적인 분위기부터 절대 눈에 들어오지 않던 사소한 디테일까지 쏙쏙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니 작업의 효율성도 높아진다. 일을 멈추고 신나게 그 시간을 즐겼는데도 이런 포상이 주어지니 이 습관만큼은 멈출 수가 없다.
최근에 알게 된 마음에 드는 문구가 있다. ‘Holding a place’라는 말인데, 어떤 역할을 맡아서 공간이나 조직의 변화 속에서 그 자리를 지켜가는 행위를 의미한다. 직역하면 ‘장소를 붙잡는다’라는 뜻이 될 텐데, 나는 이 말을 들으면 빈 공간이나 멈춰진 시간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조용한 빈 공간을 지키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울하거나 외로운 느낌은 아니다. 시골 분교의 휴일, 바지런히 학교 건물을 정비하고 정원을 가꾸면서 때때로 혼자 뭔가를 생각하며 웃기도 하는 그런 즐겁고 담담한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어떤 것보다도 비워진 곳, 멈춰진 시간을 디자인하는 것만큼 멋진 작업은 없다고 생각한다. 채워지는 부분의 아름다움만큼이나 비워지는 부분의 아름다움을 들여다보라던 조인용 선생님의 힌트로 만들어낸 완성작의 의미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잠깐 멈춤을 가장하고 묵혀진 작업이 나에게 전해주는 온갖 지혜와 설렘은 중독적이기까지 하다.
조금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비워진 곳, 멈춰진 시간에는 언제나 요정이 살고 있다는 상상을 한다. 그 공간을 붙잡고 있는 요정을 상상한다. 무언가 그 안에서 바지런히 작업을 하고 있다. 좋은 냄새와 따뜻한 빛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을 것만 같다.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조용한 공백을 따뜻하게 지켜주는 든든한 동료 같은 요정 말이다. 내가 정신없이 무언가를 채워가는 동안에는 알아채기 힘들었던 새로운 에너지를 바지런히 가꾸며 때를 기다리는 그런 따뜻한 기분이 든다.
채워가는 것과 동시에 비우면서, 달리는 동시에 멈추면서 결과물을 함께 완성해나가는 즐거움은 기꺼이 나를 멈추게 하고 비우게 한다. 열심히 요정 동료가 그곳을 지키면서 나를 불안하지 않게 무언가를 해주고 있으니까.
한지인 브랜딩 기획/디자이너 프리랜서로 활동한다.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얻은 브랜딩 인사이트를 모아 〈손을 잡는 브랜딩〉을 2020년 출판했다. 새로운 삶의 방식과 세계관에 대한 기획에 관심이 많아, 특이한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영국의 슈마허컬리지에서 1년 동안 〈Right Livelihood〉 과정을 수료했다. 지금은 강원도와 서울을 오가며 반농반X (X=브랜딩 프리랜서)를 2년째 시도하고 있다. 앞으로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아 채널 〈시골진서울진〉과 브랜드 〈비버댐〉을 운영하고 있다. @giinhan
책임편집. 이예연
편집. 김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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