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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누타입)’ 스튜디오어택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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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에서 근거 있는 확신으로, 서체를 다시 보다

브랜드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경력을 쌓으며, 서체가 브랜딩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더욱 체감하고 있다. 서체는 브랜드의 얼굴이 되는 워드마크에서 출발해, 브랜드의 톤앤무드를 드러내는 지정 서체로 확장되고, 패키지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전반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브랜딩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작동한다.
고백하자면 그동안 서체를 선택할 때 서체가 예쁘다거나 브랜드에 어울릴 것 같다는 인상과 감각에 주로 의존해 왔다. 나의 판단 기준은 대부분 눈에 보이는 형태와 직관에 가까웠다. 하지만 연차가 쌓여갈수록 서체를 감각의 영역으로만 다루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어떤 분야든 오랜 시간 축적된 역사와 기준, 논리가 있다. 문자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긴 시간 동안 견고하게 쌓인 맥락과 흐름 위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서체를 살피는 일은 그 형태가 만들어진 이유와 디자이너의 의도를 추적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과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서체를 다뤄왔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람들의 작업 방식을 접하며 인식하게 되었고, 서체를 대하는 나의 기준과 태도를 다시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 왜 이 서체가 만들어졌는지, 디자이너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어떤 맥락에서 작동하는지를 작업 시간 외에도 꾸준히 살펴봐야 한다고 마음 먹었다. 이런 과정이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논리를 만들고, 스스로 작업에 대한 확신을 갖는 데에도 필수적인 단계라 느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 FDSC 스튜디오 어택이 누타입에서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서체 베이스 파운드리라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이어졌고, 세 명의 디자이너가 함께 하나의 작업을 만들어가는 방식도 궁금했다.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알기에 어떻게 협업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작업을 완성해 왔는지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사진_이하영)

물성을 입고 파일 밖으로 나온 글자

나는 개인적으로 서체 디자인과 서체 디자이너를 ‘디자인의 디자인, 디자이너의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서체는 디자이너에게 가장 일상적인 도구이자 동시에 작업의 스타일과 분위기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메모부터 공공기관의 안내문, 계약서같은 무게 있는 문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타인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매개체이기에 서체는 형태적으로 아름답기 전에 오래 가야 하고 쉽게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괜찮은가?”를 먼저 묻게 되는 디자인. 그것이 내가 느끼는 서체 디자인의 무게감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스튜디오 어택에 참여해 누타입의 세 디자이너(김슬기, 김진희, 이수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업들이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결과물보다 어떤 질문에서 출발했고 어떤 태도로 만들어졌는지가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는 «오브제타입(Objet Type)»과  NU 콜로코 패밀리 폰트였다. 학부 시절 도자예술학과에 재학하다가 시각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꾼 나의 경험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오브제타입은 누타입과 세라믹 스튜디오 슬로렌스가 협업해 디지털 환경을 넘어 도자와의 접목을 통해 폰트를 손으로 감각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한 재미있는 프로젝트다.
Objet Type의 오브제들. 도자공예의 특성 3가지를 기반으로 탄생했다.
NU 콜로코 패밀리 폰트. 도자공예의 쌓아올리며 형태를 만드는 코일링 기법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했다고 한다. (출처_누타입 인스타그램)
도자는 흙이라는 물성을 손으로 다루는 예술이고, 디자인은 디지털 환경을 기반으로 사고하는 영역이라 작업 방식도, 사용하는 도구도, 문제를 푸는 접근 역시 다르므로 두 영역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아이디어나 영감은 도자에서 빌려올 수 있을지 몰라도 디지털 파일을 기반으로 배포되는 서체에 도자를 적용한다는 발상은 낯설고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특히 형태가 늘 일정하게 재현되는 디지털 환경과 달리, 도자는 온도나 습도, 가마의 조건 등 수많은 변수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 똑같은 형태를 복사하고 붙여 넣을 수 없는 물성의 세계에서 서체를 실현하려는 시도 자체로 강한 인상을 받았다. 디지털 환경에서 만들어진 서체를 도자로 구현하고, 다시 그 제작 과정에서 서체의 조형을 추출해내는 방식은 단순한 협업이나 형식의 결합에 머무르지 않았다.
마치 물성과 디지털이 서로의 언어를 번역해 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가마에서 굽는 과정에서 도자가 갈라지거나 형태가 휘고, 크기가 줄어드는 등 수많은 변수를 감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불확실한 재료로 디지털 폰트의 형태를 최대한 유사하게 구현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어려운 작업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오브제타입 프로젝트는 물성을 실험하는 세 디자이너의 열정과 태도로 다가왔다.
글꼴과 도자가 만났다고 하면 보통 기물 위에 레터링이 장식된 형태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오브제타입에서 글자는 장식이 아니라 오브제 자체였다. 폰트의 형태가 도자의 구조가 되고, 글자가 만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글자가 마그넷, 트레이, 화병같은 실제 오브제로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서체가 납작한 화면 속 파일이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잡고 붙이며 사용하며 폰트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누타입에서 만든 레터 노트와 다양한 책들 (사진_ 김선예, 이하영)
늘 ‘디자인을 조금 더 빨리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도자를 하던 때와 디자인을 시작한 시기를 단절된 시간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스튜디오 어택에서 누타입의 작업들을 보며 그 시기조차 공백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타입의 작업이 서체를 무형에서 유형으로 이어지며 순환하듯 내가 지나온 시간도 무 자르듯 나눠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도자예술을 했던 시기를 다르게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그 안에서 요즘의 작업으로 이어지는 영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형을 넘어 기획으로: 서체를 읽는 시선

이번에 가장 깊이 와닿았던 점은 서체가 결국 기획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다. 누타입 디자이너들은 “왜 이 서체를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더불어 형태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서체가 쓰일 맥락과 환경·전달하려는 감정과 메시지까지 함께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었다. 멋진 글자를 만드는 일 보다는 기획의 언어로 시각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서체를 볼 때 조형적인 완성도에 먼저 시선이 가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예쁜가?’를 먼저 묻기보다 ‘왜 이런 형태를 택했을까?, 이 서체에는 어떤 생각과 태도가 담겨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천천히,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서체는 디자이너의 세계관을 담는 언어이고 그것을 읽어내는 태도 역시 디자이너로서 감각을 구성하는 중요한 축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이번 스튜디오 어택은 내 디자인 관점을 확장해 준 경험이었다.

동경이 동력이 되어

그리고 항상 작업 파트너를 찾고 싶었던 나에게 산돌에서 만나 동료의 관계를 거쳐 이제는 함께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세 디자이너의 관계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서로를 향한 존경과 우정이 느껴졌고, 솔직히 많이 부러웠다. 그런 시선으로 이들이 어떻게 만나 누타입으로 활동하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잘 맞는 부분은 시너지가 되고 잘 맞지 않는 부분마저 새로운 에너지로 전환되는 관계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래서일까 누타입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되었다. 동시에 지금의 나는 스튜디오 어택에 청중으로서 참여했지만, 언젠가 이 시간이 돌고 돌아 스튜디오 어택을 ‘여는’ 입장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독 오래 남았던 조언도 있었다. 이미 잘 만들어진 폰트와 자신의 폰트 작업을 비교해 보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확 늘고, 특히 한 벌의 세트를 완성해 보는 경험이 실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다는 이야기였다. 이 말을 계기로, 언젠가 작업해보고 싶다고만 생각했던 라틴 서체 작업을 더 이상 미래의 일로만 미루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 좋은 서체와 나의 작업을 나란히 놓고, 내가 놓친 조형의 요소를 직접 분석해 보자는 계획도 세웠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추천해 주신 책*도 바로 구매했다. *《활자 기술: 라틴 활자 디자인을 위한 실천 지침》(소피 바이어 지음, 김병조 옮김, 안그라픽스)
기획과 조형, 감각과 구조. 그 사이를 오가며 디자인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디자인은 결국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자각하는 일이라는 걸 다시금 떠올리며, 스튜디오 어택에서의 배움을 앞으로의 작업 속에 하나씩 녹여가고 싶다.
이현진 시각디자인과 미술사학을 복수 전공했으며, 에이전시에서 기업의 가치와 태도를 시각화하는 브랜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메시지와 가치를 형태로 담아내기 위해 일상에서 얻은 인상을 다양한 감각으로 기록하고 그 안에 숨겨진 맥락이나 역사적 배경을 찾아 컨셉으로 빌드업하는 과정을 즐깁니다. 최근에는 한글 레터링을 공부하며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으며,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영역을 확장하는 데 몰입하고 있습니다. @hynzn.h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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