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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보이고 다가가며 알게 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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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싫어.”
20대 초중반을 지나며 자기소개처럼 이 말을 했다. 새로운 관계를 기대하지 않는 편이었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서로 다정하게 대하고 그들과 함께 있으면 즐거웠던 것과 별개로 모든 관계의 시작은 소모적이었고, 누군가에게 나를 내보이며 이해시키고 서로가 어울리는지 확인하고 추측하는 행위는 괴로움이었다.
이런 나도 자아를 내보이는 SNS 시대에 살고 있다. 주로 사용하는 SNS는 인스타그램이다. 지금은 보관함에 숨겨진 96개의 일상 글 중 온전히 하고 싶었던 말을 했던 게시물은 단 하나다. 페미니즘 관련 글이었고  ‘이런 글을 누군가는 불편해할 것도 알지만...’이라는 서두로 글이 시작될 만큼, 글을 적고 공유하는 당시에 많은 고민이 있었다. 명색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데 나 하나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면 이 행위는 진정한 네트워킹인지 의심 되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남들은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내 자신을 검열했다.
그럼에도 일상이 있는 한 인스타그램은 계속됐고 실제 나의 일상과 피드의 괴리가 커졌을 때 인스타그램을 비활성화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나는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부생이었다. 작업을 홍보하기 위해서든 요즘 디자인의 문법을 읽기 위해서든 인스타그램은 필수적이었다. 그렇게 일상을 올리다 중단된 계정은 개인사를 모두 숨긴 채 작업계정으로 활성화되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자아라고 여겨질 요소를 지웠다고 생각했음에도 게시물에 따르는 반응은 신경 쓰였다. 포트폴리오를 대신하는 도구로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데도 자아를 내보이던 이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반응의 정도에 따라 작업을 옳고 그름으로 나누고 평가의 기준에 대해 고민해볼 정도로 내 자아는 단단하지 않았고 어렸다. 내가 송출해낸 이미지는 이미지 바깥의 과정을 담은 것일 수밖에 없으나 타인에게는 과정이 지워진 채 결과로만 읽힌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스스로를 온전히 내보이는 일에 대한 고민을 끝내지도 못한 채 또 다른 문제를 마주했다. 학부생 신분을 벗어나도 사회는 그토록 피해왔던 관계를 강조하는 조별 과제의 연속이었다. 비교적 협업이 적은 편집디자인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음에도 클라이언트, 대표, 내부 동료, 인쇄소 기장님까지. 스스로의 작업을 설명하고 누군가의 피드백을 듣고, 관계 속에서 함께 해나가야 할 일이 매일 존재했다.
관계의 의미는 여전히 몰랐지만, 필요성은 체감했다. 모르니 용감했던 터라 업무를 위한 새로운 관계 형성에 나섰고, 여기서 실수가 발생했다. 관계의 깊이가 친밀도와 비례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리고 단적으로 말하면 그들과 나는 ‘친해질 수 없는’ 사이였다.
친밀함이 관계의 진전이라 오해했고 친밀함이란 나를 온전히 드러내고 상대를 솔직하게 대하는 것이라 여겼기에 그저 돌진했다. 부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왔다. 관계에 서툴렀던 탓도 있고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랬다.
아, 내보이지 말아야지. 솔직함이란 이름 아래 자신을 내보인 것이 잘못이겠거니 했다. 평가자와 나 사이에는 위계가 있었고 사실상 피드백이 아닌 평가였다. 그러니까, 고쳐야 했다. 잘못을 이해하기 전에 ‘혼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지?’라고 생각하며 미리 방어했던 어린 시절처럼 관계에서 ‘틀렸다’고 여기지 않을 어떤 이미지를 찾았고, 실제로 전보다 좋게 변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나는 이후에도 꾸준히 많은 말을 했지만 자신을 드러내진 못했다. 그동안 친구 이외의 관계는 깊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 대부분의 관계는 단기적이었다. 그렇기에 장기적이고 친밀하지 않은 새로운 관계에서는 ‘척’을 해야 하는구나, 나를 이해시키는 일도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지우는 일은 더 힘들다고 곡해했다.
결국, 내면은 숨기고 모두가 좋아할 표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앞으로 쌓아갈 관계란 생각이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을 때쯤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를 만났다.
“많이들 그러시더라구요, 나 ㅇㅇ하는 것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좋아하네? 하고 깨닫는다고.”
첫날 들었던 말처럼, 나를 지우는 관계를 벗어나 드러내는 관계를 경험하며 관계의 의미를 새로 깨달았다. 모임 내 많은 활동들이 그랬지만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건 FDSC 내 소모임 ‘디자인서당’이었다. 디자인서당은 디자인과 페미니즘 관련된 글을 읽고 매주 2시간씩 그 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FDSC는 협업용 SNS인 슬랙을 주로 사용하며 비대면의 관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디자인서당 역시 비대면이었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들과 친해지는 과정 없이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가 다른 분들과 현저히 다른 의견을 말하진 않을까 고민했던 것은 모임을 처음 시작했던 첫 주뿐이었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그와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로 뻗어나가며 교류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친구처럼 친해졌거나 공통점이 많았는가? 그렇지 않았다. 관계의 깊이는 친밀도와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단 하나의 공통점(페미니스트 디자이너)만을 공유했다. 이 관계의 깊이를 더해준 것은 서로의 신뢰, 이곳이 안전지대라는 믿음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를 수 있으며 온전한 개인의 모습을 내보였을 때 그것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믿음은 관계의 후반부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초반에 형성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폐쇄성, 혹은 페미니즘같이 당연하지만 비주류로 여겨지는 이념을 공유한 것이 신뢰를 만들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근원적인 이유와 상관없이 관계가 신뢰에 기반할 때, 관계와 그 속의 나는 어떻게 온전해질 수 있는지 느꼈던 시간이었다.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내도 편견을 갖지 않는 관계가 있다는 것, 관계의 깊이는 친밀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체감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관계에 대한 부담과 관계 형성은 곧 에너지 소모라는 오해를 지울 수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내 자신을 내보이고 다가가며 알게 된 것 세 가지가 있다.

하나. 프레임은 온전히 개인을 담을 수 없으며 결과만으로는 알 수 없는 수 많은 과정이 있다는 것.

많은 상황에서 우리는 서로를 생략과 결과로 마주한다. 이미지뿐만 아니라 대화나 글같이 더 많은 내용을 보여주는 형식 또한 우리의 있는 그대로를 전달할 수는 없다. 우리는 단적인 사건으로 서로를 마주한다. 자신의 잣대로 상대를 짐작하는 일은 간편하지만 오해를 가져오고, 상대의 시선을 이해하는 일은 복잡하지만 관계의 온전함을 가져온다.

둘. 자아는 결국 다름과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

온전함을 위해 관계를 피했지만 온전함은 관계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자아는 상대적이며 비교를 통해 성립된다. 서로가 꼭 맞는 모양새로 존재해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르기에 타인을 듣는 만큼 나를 이야기하고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하며 스스로를 더 이해하게 된다.

셋. 온전한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은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는 서로를 믿어야 한다는 것.

한 사례의 실패가 모든 관계의 실패는 아니며 스스로가 인정받지 못한 공간이 있는 한편, 인정받는 공간도 있다. 관계가 표면에서 흉내 내는 형태에서 멈추지 않으려면 서로를 판단하고 정의 내리기보다는 서로가 안전지대에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또, 주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 전환 속에서 디자인서당 숙제를 했다. 숙제는 일주일에 한 번 함께 읽은 글에 대해 논의한 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는 일이었다. 평가의 공간이라 여겼던 곳에 어느 때보다 자아가 듬뿍 들어간 글을 게시했음에도 반응이 두렵지 않았다.
정답이 없는 글이었고 그저 생각을 내보이는 일이었기에 타인의 반응이 내 게시물의 옳고 그름을 평가할 순 없었다.  자연스레 이 공간에 게시물을 올리며 반응을 살피던 나를 되돌아봤다.
시시각각 새로운 게시물이 등장하고 반응이 뚜렷한 이곳에서 인정받는 일을 꽤나 중요하게 여겼다.
부끄럽지만 과정상 아쉽거나 부족했던 작업도 그럴듯하게 보여진 화면 속에서 인정받으면 잘 해냈구나 생각하게 만들었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단편적 이미지 뒤에 숨겨진 과정을 이해하고 특정 공간 속 나의 이미지가 나의 외부를 설명할 수 없음을 안다. 그저 내보이고 기록할 뿐이다. 작업을 기록하는 행위, 더 나아가 나를 보여주는 행위에 옳고 그름이 있는가?
이후에도 종종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겠지만 보여주는 행위 그 이상의 의미는 담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마주할 다양한 관계들도 전처럼 두렵지 않다. 나의 자아는 남들과 다를지언정 그른 적은 없다. 앞으로도 많은 평가와 추측 속에 살겠지만 반대편에서는 이해와 인정도 함께할 것이다.
오해와 추측을 줄이는 일, 타인에게 믿음을 주고 얻는 일은 결국 스스로가 해낼 수 있다. 이제는 불분명한 관계 속 더욱 온전해지기 위해, 자신을 내보이고 타인에게 다가간다.
이하경 그래픽 디자이너. 여성이자 한 세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그것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한다. 스스로가 여성에게 배우고 변화해 온 것처럼 다른 여성의 세상에서 하나의 사례로 존재하고픈 마음이 있다. @lee_hakyung
책임편집. 김나영
편집. 노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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