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학부 때 막연히 ‘나도 언젠가 마음 맞는 사람과 디자인 스튜디오를 하고 싶다’ 생각만 했었는데 이렇게 빨리 시작할 줄은 몰랐다. 어쩌다 보니 같이 일하던 동료들과 함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그중 한 명과 스튜디오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스튜디오를 공동 운영하는 태경과 나는 데이터 시각화 교육과정에서 같은 조원으로서 만났고, 회사에 같이 들어가서 같이 그만뒀다. 회사를 관두고 난 후 태경과 함께 스튜디오를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 별 망설임이 없었는데, 같이 일하면서 책임감 있는 태도가 굉장히 인상적이기도 했고 디자이너와 개발자 조합이라면 만들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회사에 다니면서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우리끼리 하는 말로 ‘제작자들만의 파티’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사람들이 쓰지도 않을 것에 예산이 투입되고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채로 콘텐츠가 발행되고, 제작자들끼리 자축한 뒤에 금방 쓰임을 잃고 사라져버리는 것을 말하는 푸념 섞인 은어였다. 회사에서 반복되는 ‘제작자들만의 파티’에 지쳤던 우리는, 우리가 열심히 만든 만큼 세상에서 쓸모가 있는 것들을 만들어내자 다짐하며 스튜디오를 시작하게 되었다.
후루룩 시간이 지나 스튜디오를 운영한 지 벌써 5년이 되었다. 현재 시점에서 그간의 경험, 고민, 느낀 점 등을 나눠보려고 한다.
소규모 스튜디오를 공동 운영한다는 것
아무래도 가장 좋은 점은 혼자 일할 때보다 덜 외롭다는 점이다. 밥을 함께 먹고 소속감을 느끼고 무례한 클라이언트를 함께 욕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작업을 해나가는 데 큰 힘이 된다. 각자 작업을 하더라도 편하게 의견을 물어볼 수 있고. 특히 디자인 시안 최종, 최최종, 최최최종 등을 진행할 때 판단력을 잃은 나 대신 어느 것이 나은지 알려주기도 한다.
따로, 또 같이 작업하기에 수익이 들쭉날쭉한 프리랜서 생활의 단점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둘의 수익 분배율이 5:5이다 보니, 협동조합 같은 느낌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석 달간 자체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서 디자인 외주를 받지 않을 때는 동업자가 돈을 벌어오기로 합의를 보면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동일한 지분을 가진 두 명이서 하는 일이다 보니 다수결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재밌다. 총 인원이 3명만 되어도 2:1이 가능하니 나머지 한 사람의 의견은 무시당할 수 있는데, 우리는 1:1이라 만장일치가 필수다. 서로를 설득하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여 설득의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의사결정이 빠르진 않지만 설득의 과정에서 생각이 더 진전되기도 하고, 지난한 줄다리기 속에서 결정난 의견은 누구 하나 배제되지 않고 둘다 동의한 것이라는 점이 좋은 부분이다.
좋은 곁을 둘 수 있다는 것
회사를 나와 사업을 한다는 것은 자기 주변에 둘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일이다. 회사에 다닐 때는 별 빻은 소리를 다 해대는 사람들을 참아내야 했는데, 지금은 주변 사람들을 나의 의지대로 꾸릴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대학교 1학년 때 취미로 기타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다. 좋아하던 곡인 〈Falling Slowly〉를 꼭 한번 완주해보고 싶었다. 어느 날 기타 선생님이 밥을 사준다기에 따라가 식사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의 친구로 보이는 남성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은 전화를 받더니 아주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어~ 나 지금 어린 여자랑 같이 있잖아~”라고 말했다. 난 그를 스승으로 생각했는데 나는 그에게 어린 여자였구나. 그 후로 기타 학원에 나가지 않았다.
디자이너로서 일을 하면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숱한 대상화와 배제를 겪었다. 함부로 외모 칭찬/비하를 한다든가 홍일점 취급을 하며 대단히 좋아하다가도 중요한 일적인 모먼트에는 끼워주지 않는다든지 하는 일. 명확하게 가시화되지 않기에 오히려 나 스스로를 의심케 하는 경험들. 그런 경험이 하나둘 쌓이면서 나는 내 의지나 실력과 상관없이 일을 오래 할 수는 없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기타 학원을 그만둘 때와는 차원이 다른 무력감과 상실감이 몰려왔다.
다행히 스튜디오를 하면서는 대상화나 배제를 당하는 경험이 현저히 줄었다. 활동가들이 많은 서울혁신파크에 입주해서 월경컵 정보 전달 프로젝트를 주로 했다 보니 자연스레 알고 지내는 사람이 여성, 페미니스트, 활동가들로 좁혀졌다. 말조심해야 하는 건 오히려 내 쪽일 경우가 많았고, 의뢰받는 일들의 주제도 인권, 페미니즘, 성평등 쪽이 많아져서 공부가 많이 되기도 했다. 당사자의 감각이 필요한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점점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나의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곁에 좋은 사람들을 두니 종종 좋은 프로젝트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좋은 프로젝트는 세상에서 계속 쓰일 것, 혹시 모를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클라이언트와 같이 할 수 있는 프로젝트이다. 그런 일을 하면 회사에 다닐 때와는 차원이 다른 일의 보람을 느낀다. 내가 이러려고 디자인하는 것이구나 싶다.
행복한 필터 버블에 갇혀 지내다 보면 세상이 많이 나아졌다고 느낀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을 알 수 없기에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내가 꼭 세상의 모든 관점을 알아야 할까? 아니, 그럴 수나 있을까? 내 심신의 건강을 위해 버블 속에 있기로 한다.
적정 규모?
우리는 일할 때 할 수 있는 한 모든 부분에서 꼼꼼히 체크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적은 예산의 일에도 많은 노력을 쏟는 편이고, 받은 만큼만 영리하게 작업을 하는 게 아직은 잘 되지 않는다. 매번 전력 투구를 하면서도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어 현타가 올 때도 있다.
요새는 어차피 우린 매번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런 성향을 바꿀 수는 없다는 걸 알기에, 최대한 우리의 노력을 투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프로젝트를 받자는 생각을 한다. 계약 전에 쎄-한 느낌이 들면 되도록 안 하는 편이다. 그런 클라이언트와 하는 프로젝트는 작업 진행 과정 내내 괴롭다. 그나마 돈이라도 많이 받았으면 덜 화나는데 그런 클라이언트는 돈을 넉넉히 주는 법이 없다.
그런데 막상 예산이 크고 기간이 긴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고민이 된다. 인력이 두 명뿐이다 보니 큰 프로젝트를 받으면 거의 몇 개월을 그 일만 하고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대단히 의미가 있는 일이거나 자체 프로젝트가 아니고서야 몇 개월을 하나의 일에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럴 땐 종종 함께하는 직원이 있는 미래를 상상해보곤 하는데, 늘 상상만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매달 월급을 줄 수 있을만큼 일의 수급이 안정적이지도 않거니와 업무 매뉴얼도 딱히 없다. 죄 없는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진 않다. 스튜디오 자체의 규모를 키우는 대신 크고 멋진 프로젝트를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협업자들을 주변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에게 맞는 공간을 찾아서
5년 차인 우리는 지금 네 번째 공간에 머무르고 있다. 이전에는 단독 사무실, 입주공간, 셰어 작업실 등 다양한 형태의 공간을 사용해보았다. 한곳에 안정적으로 머무르지 않고 이사를 자주 다녀야 한다는 점은 힘들었지만, 다양한 공간에 머물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해질 수 있었다.
첫 번째 공간은 집 근처였다.
부모님이 창고로 쓰시는 공간을 꾸며서 지낸 첫 사무실
스튜디오를 시작할 당시 우리는 합정역 근처에 사무실을 보러 다녔는데, 월세가 너무 비쌌다. 당시 우리에게 필요한 공간은 그저 책상 두 개 놓아둘 수 있는 공간이었으므로, 부모님이 창고로 쓰시는 공간에 책상 두 개를 놓고 사무실로 썼다.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도 없어서 방해받지도 않고, 서로가 있으니 적당히 눈치도 볼 수 있어 작업하기 정말 좋았다. 덕분에 회사를 다니면서 필요하다고 느꼈던 공부나 자체 프로젝트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고립되어갔다. 실력만 쌓으면 일이 알아서 굴러들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던 것이다.
두 번째 공간은 서울혁신파크 청년청이었다.
작업 공간과 월경컵 전시, 상담 공간이 함께 있었던 두 번째 공간
첫 번째 공간에서 2년 넘게 지내고 있던 우리는 부모님이 일터를 경기도로 옮기시면서 급히 새로 지낼 사무 공간을 찾아야 했다. 마침 청년허브에서 운영하는 공간지원사업이 있었고, 우리가 진행하고 있던 월경컵 정보 전달 프로젝트와 연결점이 있어 지원한 끝에 선정이 되었다. 덕분에 넓은 공간을 저렴한 임대료에 쓸 수 있게 되었다. 공간은 청년청 1층에 위치해 있었는데, 개방감이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 공간 옆에는 청년청 입주자 및 시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 공간, 공유 주방, 회의실 등이 있었다. 우리는 이곳을 30%는 디자인 스튜디오로, 나머지 70%는 월경컵을 전시하고 사용법을 알려주는 공간으로 사용했다.
월경컵 교육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여기서 우리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원사업 주체인 청년허브 사람들, 서울혁신파크에 입주한 청년 단체들, 월경컵을 보거나 사러 온 손님 등 알고 지내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면서 자연히 작업 의뢰도 많아지게 되었다. 사회적 자본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수시로 찾아오는 손님, 원치 않을 때 콧속을 파고드는 음식 냄새나 소음 때문에 작업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작업 효율이 낮아지니 새벽까지 작업해야 했고, 혹여나 손님들이 헛걸음을 하게 될까 봐 정해진 공간 오픈 시간에 맞춰 무리하게 출근을 해야 했다. 덕분에 2년 동안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신체적, 정신적 피로도 쌓여갔다. 온몸이 쑤셨고, 작은 일에도 쉽게 화가 났다. 임대 계약이 끝나고 공간을 계속 사용하기 위한 지원서 작성을 앞두고 정말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우린 이사를 하기로 했다.
세 번째 공간은 을지로의 셰어 작업실이었다.
FDSC 회원분이 운영했던 세 번째 공간, 을지로에 있던 셰어 작업실
첫 번째 공간인 단독 사무실이 주던 작업의 효율, 공유 공간이 있던 두 번째 공간이 주던 사람들과의 연결, 그리고 서울의 비싼 월세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셰어 사무실에 입주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FDSC에서 하는 포트폴리오 소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마침 같이 소모임을 하던 디자이너 한 분이 셰어 작업실을 운영하신다고 해서 들어가게 되었다. 역세권임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월세, 아무나 불쑥불쑥 들어오지 않으면서도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공간. 정말 딱 우리가 원하던 공간이었다. 화장실만 빼면. 을지로에 있는 건물답게 화장실도 오래된 화장실이었다. 냄새가 나진 않지만 쪼그려 앉아서 용변을 봐야 하고, 휴지가 잘 내려가지 않아 변기 안에 있는 휴지를 막대기로 눌러줘야 했다. 다행히 역세권이라 주변에 화장실을 쓸 수 있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물을 많이 마시는 우리는 점점 한계에 부딪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후 우리는 새로운 공간 임대 사업을 지원해서 다 같이 공간을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지금 머물고 있는 네 번째 공간으로 오게 되었다.
충무로에 있는 스투키 스튜디오 사무실
충무로역 근처에 있는 곳인데, 우리가 거의 매일 상주하여 작업하는 사무 공간이면서 다른 디자이너분들과 함께 쓰고 있는 공용 작업실이기도 하다. 이제 2개월이 조금 넘었지만 공간에 대한 만족도는 아주 높다. 지원받아 구한 공간이기 때문에 우리 자본만으로 구했다면 불가능했을 평수에, 햇살도 잘 들어온다. 주중에는 거의 단독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작업에 집중할 수 있고, 저녁이나 주말에는 다른 디자이너분들과 함께 쓰기 때문에 고립감도 없다. 이 공간에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며 작업을 하는 중이다. 내년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투잡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스튜디오를 시작한 이래 계속 투잡을 하고 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투잡을 하며 산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회사를 나온 후 주변을 둘러보니 나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부업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스튜디오 초창기에 우리는 부모님이 주시는 디자인과 아무 관련이 없는—밀가루를 퍼 담는—일로 생활비를 벌었는데, 이때 스스로 굉장히 ‘정상 궤도’에서 벗어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하다 보니 그 일은 나름 매력적이기도 했는데,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인 디자인 작업과는 달리 사람들과의 복잡한 커뮤니케이션도 필요 없었고 많은 생각도 할 필요가 없었다. 하고 싶은 시간에 생활비 벌 만큼만 부업을 하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책 『안녕, 월경컵』과 웹사이트 『모여라 월경컵』을 만들었는데, 외주 작업을 했더라면 절대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청년청 공간에서는 조금 더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와 관련 있는 부업을 했다. 매일 ‘안녕, 월경컵 팝업스토어’를 열어 손님을 맞이하고 월경컵 사용법을 설명해주고, 착용을 돕고, 책과 월경컵 판매 등을 하는 일이었다. 처음엔 재능 기부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월경컵 판매나 월경컵 입문 교육 등을 통해 조금씩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디자인이 아닌 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생긴 것이었다.
이때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우리가 일을 고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이 넘쳐나서 고를 수밖에 없어서가 아니었다. 다른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무례한 클라이언트가 주는 일이나 하고 싶지 않은 프로젝트를 받지 않을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프로젝트를 받지 않는 대신 월경컵을 N개 더 팔자는 식으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투잡이라는 것이 선택권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장치로 작동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니 늘 다른 부업거리를 생각하려 한다. 그덕에 코로나로 매출이 33% 정도 감소했던 올해 초에도 마냥 불안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언제든 투잡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일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작지만 꾸준히 들어오는 돈앞서 말한 투잡의 중요성과도 비슷한 맥락인데, 작지만 꾸준히 들어오는 돈은 정말 중요하다. 내가 아프거나 일을 하기 싫을 때 쉴 수 있으려면 노동 수익이 아닌 다른 수익원이 필요하다. 코로나로 긴급생활지원비를 받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월급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돈이지만 그게 얼마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 말이다.
스튜디오를 하는 동안 나는 노동 수익이 아닌 수익을 벌어본 적이 있다. 한 번의 노동으로 꾸준히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책도 있었고, 월경컵을 판매해서 얻는 유통 수익도 있었다. 유통 수익을 처음 손에 쥐던 날은 어안이 벙벙했다. 기분이 나쁘면서 좋기도 하면서 그랬다. 근 11년간을 노동 수익으로만 돈을 벌어왔는데 내가 만들지도 않은 것을 팔아서 이렇게 돈을 벌 수 있다니. 막연하게 아는 것과 직접 그렇게 벌어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지금은 월경컵 판매를 하지 않고 있어서 유통 수익은 발생하지 않지만, 한 달에 용돈 삼을 만한 돈이 책 판매 수입으로 들어오고 있다. 디자인 작업으로 버는 비용에 비해 크지 않은 돈이지만 그 돈은 재난소득처럼 나에게 어떠한 안정감을 준다. 조만간 책 이외에도 한 번의 노동으로 수익을 꾸준히 낼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시도해보려고 하고 있다. 이모티콘 제작, 영문 폰트 판매 등이다. 소소한 용돈 정도겠지만 흐름을 잘 타서 대박이 날 수도 있지 않을까?
앞으로의 실험들
거창한 계획은 없지만 조만간 해보고 싶은 실험들은 있다. 지금 받고 있는 공간 지원사업이 끝났을 때 이 공간의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공간에 상주할 작업자들을 받는 것이다. 적어도 3-4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여태까지는 프로젝트를 받을 때 예산상의 이유로 협업을 염두에 두지 못했는데, 이제는 협업을 염두에 두고 예산을 조금 더 책정해서 받아보고 싶다. 할 수 있는 작업의 폭도 넓어지고 퀄리티도 상향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만간 꼭 하려고 하는 건 우리의 포트폴리오 웹사이트를 업데이트 하는 것이다. 그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도 했고 포트폴리오 업데이트 없이 일을 받아 할 수 있었기에 포트폴리오가 2017년에 머물러 있다.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 했을 때 또 어떤 새로운 일이 들어올지 기대가 된다.
마무리하며
회사를 나와도 죽지 않는다는 것, 생각보다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는데 전달이 잘 됐을지 모르겠다. 잘 맞지 않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심신이 피폐해져가고 있다거나, 멋진 걸 만들어보고자 넘치는 의욕으로 회사 일에 열정을 쏟아부음에도 일이 의미 없게 느껴진다면 감히 소규모 스튜디오 운영을 추천해본다. 우리도,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좋아하는 일을 건강하게 오래오래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정유미
‘스투키 스튜디오’를 공동 운영한다. 인쇄물, 웹 디자인 및 데이터 시각화 작업을 주로 한다. 개인의 선택권에 관심이 많으며, 자본의 논리에 의해 주목받지 못하는 정보를 생산하는 작업을 좋아한다. 월경컵을 사용해본 후로 편리함에 화들짝 놀라 월경컵을 안 쓰는 사람은 있어도 못 쓰는 사람은 없도록 정보 전달 작업을 하고 있다. 책 『안녕, 월경컵』, 『안녕, 페미사이클』을 집필하고, 월경컵 전시/상담/피팅을 하는 공간 〈안녕, 월경컵 팝업스토어〉를 2년 간 운영했다. 성평등 강사 이수를 받았고 종종 월경 교육 강사로 출몰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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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편집. 최지영
편집. 최지영, 노윤재, 김현중, 이예연, 하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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