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세계에서 발견하는 공통의 감각-『서울의 엄마들』 돌봄, 그 행위와 가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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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SC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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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일까지 그만둬야 한다고?’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어느 날, 한 기사를 보고 적잖게 놀랐다. 바로 ‘돌봄노동’에 관한 이야기로, 코로나19로 인해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의 개학이 연기되면서 일을 그만두고 전업 가사 활동 중인 여성이 전년 대비 20여만 명 증가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나에게 ‘일’이란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경제적으로는 자유로움을, 사회적으로는 주체성을 인정받는 의식과 같은 것인데,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둔다니 상상하기 어려웠다. 꽤 오랫동안 시간을 유연하게 운용하는 프리랜서 생활을 해왔고, 주변에 나와 생활을 함께하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없기 때문에 기사에서 말하는 돌봄노동의 강도도 쉬이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건 내가 돌봄노동에 대한 책무를 지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은 아닐까하고.
그 기사를 읽은 당시에 나는 개인 작업으로 코로나19로 발생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조사하고 있었다. 돌봄노동에 관한 기사도 그중에 발견한 것으로 아무래도 여성의 시선으로 자료를 살펴보다 보니 가장 눈에 많이 띄던 것이 여성의 노동에 관한 주제들이었다. FDSC.txt 2021년 상반기 주제인 ‘생산’을 보고 어떤 글을 쓸지 몇 날을 고민하던 차에 현재 다수의 여성이 겪고 있는 돌봄노동에 관한 문제들에서 ‘재생산노동’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렸다. ‘그래, 생산을 담당하는 쪽이 아닌 그 뒤편에 있는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 생산노동의 뒤편에 존재하는 이야기, 바로 돌봄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 속 두 가지 노동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두 가지 노동이 존재한다. 하나는 생산노동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 뒤편에 존재하는 재생산노동이다. 생산노동이란 인간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각종 재화를 만들어 물질적 부를 창출하는 일을 뜻한다. 보편적으로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금전적 가치를 지닌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을 말하며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이들이 생산을 위한 용역을 수행하고 임금으로 보상받는 생산노동 종사자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이 생산노동 외에 필수적인 다른 노동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재생산노동이다. 재생산노동은 임금 노동 외의 모든 노동 행위를 말한다. 가령 출근을 하기 전 아침 식사를 위해 요리하는 일, 퇴근 후 집에 와서 내일 출근시 입을 옷을 챙기는 일, 휴식을 취하기 위해 청소를 하는 일 등 생산노동을 위해 필요한 재충전 활동을 모두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돌봄노동은 재생산노동 중에서도 환자나 노인, 어린이와 같이 자립하기 위해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의미를 확장해서 우리 생활에 대입해 생각해 본다면 돌봄노동은 부모, 자녀를 포함해 친구, 애인, 이웃, 반려동물의 삶을 위해 수행하는 일이자, 타인의 생활을 생산하는 노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유한한 신체를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른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거나 돌봄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본격적으로 불거진 가정 내 돌봄노동 문제를 재택근무나 아동돌봄지원사업 등의 제도를 확대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경우가 가족 구성원들의 역할 분담과 같이 개인적인 권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 여성이 더욱 적합하다는 인식이 여전한 상황에서 돌봄에 대한 여성들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기사와 통계 자료가 코로나19로 인한 돌봄노동 부담이 여성에게 더 많은 휴가를 사용케 했고, 나아가 노동시장 이탈까지 촉진시켰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면서 마음속 한구석에서 복잡한 안도감과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Double Income, No Kids’가 신조인 2인 가구 구성원으로서, 아직은 경제생활을 하시는 엄마와 신체 건강한 가족을 둔 딸로서, 육아, 간병, 가사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내 환경이 일종의 특권처럼 느껴졌다. 만약 아픈 가족이 있어 내가 곁에서 간호해야 한다면, 함께 생활하는 어린이가 있어 등원과 하원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면, 내 주체적인 삶을 가능케하는 생산노동을 지금처럼 자유로이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돌봄, 그 행위와 가치에 대하여

『서울의 엄마들』은 이런 나의 복잡한 심경을 위로하듯 다가왔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삶에 놓인 시민이자 여성이자 엄마인 열 명의 사적 서사를 담은 책이다. 에세이와 인터뷰 그리고 사진을 통해 누군가를 ‘돌봄’하거나 혹은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경험할 ‘돌봄’의 행위와 가치를 이야기한다. 열 명의 엄마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도 다양하고, 가족의 형태나 사는 곳, 하는 일도 모두 가지각색이다. 전업주부로 가사 활동을 하기도 하고 생산노동 종사자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어 돌봄에 대한 무게와 가치를 다양하게 제시하며 2020년 팬데믹의 시간 속에 우리는 ‘어떤 돌봄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 질문한다.
‘사람은 돌봄의 순환 고리에 적을 둔 존재라는 이 분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간혹 잊거나 가볍게 여기기도 하고, 때론 그 고리의 늪에 깊이 빠져 돌봄이 지우는 무게에 숨이 턱 막히기도 한다. 당신은 어떤 돌봄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가.’
열 명의 엄마들은 각자 처해있는 상황에서 어떤 돌봄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 응답한다. 어떤 이는 사랑으로, 어떤 이는 의무감이나 책임감으로 수행하는 돌봄노동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에서 기쁨과 감사함, 때로는 걱정과 불안함을 내비치기도 한다.
‘엄마가 되고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평생 누군가의 돌봄 속에서 살아왔고 또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왔다는 것 역시 새로 추가된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일을 자아실현으로 생각한다지만, 나는 아니다. 일이란 나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는 생계 수단이다. 나는 남편과 경제 공동체를 이뤘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보탬이 되게 함께 벌고 있다. (...) 아이 돌봄만 생각하면 둘 중 하나가 그만두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가족 모두의 삶을 돌보려면 둘 다 일을 하는 것이 맞다. 이런 생각으로 나는 아이 돌봄에 내 인생을 올인하지 않고 돌봄의 균형을 찾기 위해 일터로 나간다.’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아 키우는 지금까지 회사로부터, 팀원들로부터 돌봄을 받는다고 느낀다. 임신 당시, 팀원들이 늘 점심 메뉴에 신경을 써주었고 따듯한 안부를 건네줬다. 만삭 때 시작된 코로나19는 아기가 9개월이 된 지금까지도 감염자 수가 줄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 회사는 나만 재택근무를 하도록 배려해 주어서 약 2주 전 업무에 복귀한 이후 딱 한 번 사무실에 잠깐 들러 회의한 것 외에는 모든 업무를 집에서 하고 있다. (...) 회사와 팀원들에게 매우 감사하다.’
엄마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각자의 상황에 따라 돌봄을 경험하는 시간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엄마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그동안 자신이 받아온 돌봄과 앞으로 주게 될 돌봄에 대한 의미를 새로이 깨우친다. 어떤 이는 생산노동 활동과 돌봄 활동 사이의 균형을 탐색하면서 여전히 돌봄의 의미를 고민하고, 또 다른 이는 회사 팀원들로부터 자신이 받고 있는 배려에 돌봄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다양한 목소리에서 비롯한 이 돌봄의 의미들은 나의 생활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할 수 있다. 나 역시 동료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시간과 마음을 내어줄 때가 있고, 반대로 내가 그들로부터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돌봄을 받기도 한다. 일이 바쁠 때면 내 몫의 가사일을 도와주는 가족이 있고, 종종 출장을 떠나는 친구의 반려견을 맡아 돌봐주는 일까지. 균일하지 않지만 이러한 경험들을 마주하며 나처럼 누군가에게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그 돌봄이라는 행위와 가치가 내 삶에도 늘 존재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서울의 엄마들』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책에 수록된 사진이다. 책의 사진들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사진가가 찍은 인물 전체 및 부분 모습들이고 다른 하나는 참여자들이 일회용 카메라로 직접 기록한 일상 장면들이다. 인물 사진은 참여자 각자의 개성을 멋진 포즈와 표정을 통해 2020년 서울의 엄마들을 기록했다. 참여자들의 눈, 손, 귀 등 신체를 부분적으로 클로즈업한 사진은 특히 인상적이다. 여성, 시민, 그리고 엄마라는 정체성을 가진 존재들이 자신의 주체성을 공고히 보여주는 느낌이다. 참여자들의 집에서의 일상, 일터에서의 시간들, 또 가족과 함께하는 순간들 등을 일회용 카메라로 직접 기록한 사진들은 내 일상처럼 익숙하면서도 때론 이국의 한 장면인 듯 생경하게 보인다. 이 스냅숏들로 텍스트 너머에 있는 참여자들의 삶을 더 가까이 상상할 수 있는가 하면, 책 속의 텍스트를 내 일상으로 데려와 가까이에 있는 ‘돌봄’의 행위들을  관찰해보기도 했다. 또 이 무사하게 보이는 일상 속 장면들은 코로나19 이슈나 여성의 관점에서 접하는 수많은 사회 문제들, 가령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낙태죄, 정치계 성범죄와 n번방 사건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첨예한 글을 읽고 상승한 괴로운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 내 주변에 잡음이 일어도 꿋꿋하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니 왜인지 위안이 되었다. 사진 속 장면은 조용하고 평화롭다.
한편 전통적인 돌봄의 주체로 여성이 호명되는 사회 인식과 시스템에 목소리를 낸 엄마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대목이다. 돌봄이라는 행위를 수행하는 데 더 적합한 성별이 존재할 수 없지만, 아직도 가정 내 돌봄 영역의 전통적 주체로 모성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엄마들에게 지워진 돌봄의 책임은 이들의 경제・사회・정치적 지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령 노동시장에서의 생산노동과 가정 내 돌봄노동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이유로 고용이나 승진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위치의 여성은 소득 불안정을 경험할 가능성도 커지며 따라서 사회・정치적 참여 기회 또한 박탈당하는 것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는 결국 불평등하게 지워진 돌봄의 부담으로 인해 여성이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돌봄이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일이나 일상생활의 일부를 포기하고 다른 이에게 전념 해야하는데, 여기에 최적화된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런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밑도 끝도 없이 그 의무를 강제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황을 고려해서 가장 적합한 사람이 하는 게 올바르다고 본다.’
‘코로나19 때문에 애들을 긴급돌봄교실에 보냈는데, 돌봄 선생님 중 남성은 없다. 여성이 돌봄 선생님으로 채용되는 시스템이더라. 여성에게 씌워지는 돌봄의 프레임은 견고하고 기대도 높다. 역사 대대로 내려오는 그 인식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걸 나처럼 작은 한 명의 사람이 깨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 게다. 어찌 보면 큰 인식 전환의 경계에 있는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숙제 같다.‘

낯선 세계에서 공통의 감각을 발견하기

『서울의 엄마들』에서 보여준 돌봄은 아이를 먹이고 입히는 것부터 아픈 이웃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 식물이 잘 자라도록 물을 주는 것까지 넓고도 다양하다. 그리고 이 돌봄에 대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누구나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고, 누군가를 돌보거나 돌봄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 날 기사에서 만났던 다수의 여성이 짊어지고 있는 돌봄의 무게가 내 처지에서는 그리 무겁지 않은 편이라는 생각에 안도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 위치가 돌봄 수행자로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삶을 오롯이 공감하기 어려운 조건의 사람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많은 여성과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길 원하지만 나 자신이 어떤 여성들과는 이질적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에서 그들과 결속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불안감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울의 엄마들』은 이런 나를 그들의 일상으로 초대해 개인의 경험과 조건은 동일할 수 없으며 누구나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또 누구에게나 돌봄과 무관한 시간은 존재할 수 없기에 돌봄이라는 행위와 가치에 대해 폭넓은 관점으로 바라보고 논의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서울의 엄마들』처럼 여성으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다른 이들의 시간과 경험은 어디선가 고르지 않게 기록되고 있을 것이다. 이 고르지 않은 기록에서 더 많은 공통의 감각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균일하지 않은 경험이 모여 하나의 관점을 형성하고 그 관점을 확장해 나감으로써 결국에는 또 다른 연대의 장을 생산한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낯선 세계에 동참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와 응원을 보낸다.
이지원은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출판사인 아키타입(archetypes)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픽디자인을 기반으로 주로 이미지와 공간을 다루며 디자인・미술・역사 분야 기관과 협업해왔습니다. 디자인・시각문화에 관련한 리서치・집필 활동을 하고 비정기 시각문화 연구서 «새시각»을 발행합니다. @archetypes.designstudio
책임편집 김나영
편집. 김현중, 노윤재, 이예연, 하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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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 중이던 <안녕월경컵, 팝업스토어>에서 월경컵 입문 워크숍을 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