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디자인‘?🤔 -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위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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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프로젝트(을)를 획득했습니다 !!

‘친환경 디자인’이라는 말은 성립이 되는 걸까? 환경에 이로우려면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는데 이상하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냐면 ‘친환경’이라는 단어는 광고 속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졌고, 실천해야 할 때가 다가오면 밀린 방학 숙제처럼 매번 ‘다음에’를 외치고 말았기에. 비닐 위 여름의 푸른 녹음 빛으로 인쇄된 친환경 캠페인을 볼 때면 환경 사랑은 먼 훗날 이야기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구 온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이 지구촌 곳곳에서 시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어느 날 갑자기, 디자이너인 나에게까지 왔다. 회사에서 고객을 대상으로 ‘친환경 캠페인’을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별안간 내가 캠페인의 디자인 담당이 되어버렸다. 통과되지도 않을 샘플을 잔뜩 만들고, 가제본 명목으로 수십 장의 단면 컬러 프린트를 뽑아대던 사무실의 디자이너는 갑자기 각성해야 했다. 이제 만드는 과정에서 그치지 않고 없어지는 과정까지 생각해야만 했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환경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단순 사회 공헌 수준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하나의 ‘캠페인’으로서 고객에게 알려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 디자인하는 자 모두 유죄

어려운 과제가 눈앞에 떨어졌다. 유통업에 종사하는 디자이너로서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오프라인 유통업의 특성상 소비자들은 공간에 와서 브랜드를 경험한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를 생생하게 심어주기 위해서는 뭔가를 계속해서 만들어야 한다. 늘 새롭고 눈에 띄게. 더군다나 공간에서 계절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한 계절을 위해 사용된 어떤 조형물, 홍보물은 그 역할을 다 하면 곧바로 폐기되곤 한다(물론 재활용, 재사용하는 것들도 많다). 게다가 기간이 짧은 행사들은 정보가 고객에게 빠르게 전달돼야 하므로 각종 인쇄, 출력물들이 만들어지고 버려지고를 반복한다. 또한, 유통업계는 편리함을 위해 한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품과 비닐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장바구니, 텀블러 가지고 있지만 깜빡하고 나올 때가 너무 많지 않나. 그럴 때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 바로 비닐이다. 물론 생분해성 비닐이 시중에 많이 나왔지만, 아직 단가가 너무 비싸고, 대량으로 소비해야 하는 회사에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도 하다.
이렇듯 유통업에 있으면서 단기간 사용되고 버려지는 물건을 피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용을 다 한 것들은 버려질 때 어디로 가는 걸까? 분리배출은 잘 이루어질까? 무슨 소재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것들은 제대로 불타거나 분해되지도 않고 영원히 지구를 떠도는 아닌지 걱정된다. ‘친환경’ 디자인을 해야 한다면 이런 장식물을 만들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을 알지만 단번에 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환경에 영향을 적게 주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나는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만들어야 한다!

환경 보호는 멀고 프로모션은 당장 다음 주부터 시작이다. 지구 온난화보다 뜨겁게 느껴지는 눈앞에 업무를 외면하긴 어렵다. ‘친환경’을 머리와 가슴에 새기고 제작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방법들을 찾아보고 실무에 적용하고자 했다. 이미 세계 각국에 많은 디자이너와 회사들이 ‘지속 가능한(sustainable)’ 디자인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왔다. 그 내용 중에 내가 적용한 방법과 앞으로 참고해서 시도해 볼 만한 몇 가지 방법들을 소개해본다.

1. 비목재펄프 & FSC 인증 종이 사용

a. 얼스팩

이 종이는 사탕수수 찌꺼기로 만들어졌다. 그 때문에 나무를 베지 않는다. 폐기 시 땅속에 묻으면 자연 분해돼서 제조부터 처리까지 공해를 최소로 줄여 친환경적이다.
최근 얼스팩이 식품 패키지에 사용된 것을 알게 된 후, 친환경 명절 선물 패키지를 홍보하는 제작물에 이 종이를 사용했다. 종이 자체도 환경에 영향을 적게 미치는 것도 좋았지만 표백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톤의 제지 컬러도 ‘친환경’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다음 명절에 재활용할 수도 있어 폐기율 감소도 기대해본다.
사탕수수 찌꺼기로 만든 종이 '얼스팩'을 이용해 제작한 <그린 패키지> 홍보 POP

b. 타이벡 Tyvek

타이벡은 고밀도 폴리에틸렌으로 만들어졌다. 플라스틱으로 분리배출이 가능하며, 불에 태우면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되는 소재라 환경 오염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이 특수지는 물에 강하고 인장강도가 높아 튼튼해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타이벡 소개 페이지 참조. tyvekmall.com)
몇 해 전 고객에게 비닐 저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회사에서 타이벡을 활용해 장바구니를 제작했었는데, 그때 이 소재를 알게 되었다. 원래는 흰색인 종이에 전면 컬러로 인쇄했는데 발색도 훌륭했으며 무게도 가벼워서 들고 다닐 때 부담스럽지 않았다.
타이벡을 사용해 제작한 현대식품관 타이벡 장바구니 (디자인: 현대백화점 디자인팀 박은하, 변우석)

c. 그 외

위에 소개한 종이 외에도 다양한 컬러와 질감의 비목재 펄프지가 많다.
기회가 있을 때 사용하려고 몇 가지 종이들을 찾아봤다. 만약 종이 종류를 고려할 여유가 있다면 이런 친환경 종이를 먼저 생각해보면 어떨까? (아래 내용은 각 종이 샘플책을 참고하여 작성했다. 코코아, 커피, 플로라: 두성종이 / 리메이크: 삼원특수지)
i. 코코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코코아 종이는 코코아 껍질 분말을 재사용해 만들었다. 재료의 비율을 조절해 다양한 컬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장점이다.
ii. 커피
이 종이는 커피 컵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커피 컵 재생 섬유를 50% 함유했으며 6가지 다양한 색상을 가지고 있다. 종이 컬러 이름도 에스프레소, 모카 등 커피를 연상시켜 흥미롭다.
iii. 리메이크
리메이크지는 가죽 부산물을 25% 활용해 만든 종이다. 부산물 이외에 리사이클 펄프도 포함되어 있다. 종이에 텍스쳐가 살아있는 점이 특징이다.
iv. 플로라
플로라는 코튼이 10% 함유되어 있으며 재생 펄프를 사용한 제품이다. 이 종이도 역시 종이 무늬가 살아있고, 차분한 컬러 톤이 인상적이다. 이름 때문인지 왠지 모를 폭신함도 느껴진다. (코튼 때문인가) 기회가 된다면 아름다운 초대장이나 패키지를 제작할 때 사용해보고 싶다.

D. FSC 인증 종이

종이 샘플에서 FSC 로고를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로고는 산림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된 비영리 단체인 산림관리협의회(Forest Stewardship Certification)에서 인정한 제품에 적용된다. 종이를 비롯해 불법 벌목을 하지 않고 생태계와 산림을 훼손하지 않는 기준을 통과한 제품에 부여된다. 책임감 있게 관리된 목재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지속가능한 자연에 도움이 된다. (인증 라벨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www.fsc-uk.org/en-uk/about-fsc/what-is-fsc 참고.)
(좌)FSC 인증 마크 (우)맥도날드 포장지에서도 FSC 인증 마크를 발견할 수 있다.

2. 종이 로스가 적은 크기로 디자인하기

종이 로스가 무슨 말이냐? 이는 인쇄 과정을 알고 있다면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종이 로스(Loss)가 적다는 의미는 인쇄 후 재단 시 잘려 나가는 종이의 양이 적다는 의미이다. 인쇄물을 만들 때는 큰 사이즈 종이를 사용한다. 이를 보통 국전이나 4*6전지라고 한다. 인쇄할 때 커다란 종이에 원하는 크기로 작업 된 데이터를 여러 장 올려서 인쇄한 후 접고 자르는 과정이 진행되는데, 이때 종이와 최종 결과물 크기에 따라 잘려 나가는 종이의 양이 달라진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A 시리즈, B 시리즈 종이가 종이 로스가 많지 않도록 규격화된 사이즈이다.
종이 종류에 따라 A 종이(국전)와 B 종이(4*6전지) 시리즈 사이즈가 나온다.
규격 크기에 맞춘 인쇄 자체가 종이를 자투리 없이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이기에 잘리고 버려지는 종이량을 줄일 수 있다. 특히 인쇄 부수가 많을 때 이런 전략이 빛을 발할 것이다.

3. 친환경 잉크 사용하기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콩기름 잉크가 있다. 물론 국내에서도 콩기름 잉크를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기존 잉크 성분 중 일부만 대체하는 것이고 또 여러 가지 화학 성분이 들어가기 때문에 완전히 친환경이라고 하기엔 조금 아쉽다. 그 아쉬운 마음을 떨칠 길 없어 잉크와 관련한 다른 사례를 찾던 중, 최근 미국에 있는 Cast Iron Design에서 해조류를 바탕으로 만든 잉크를 사용한 프로젝트가 눈길을 끌었다. CID는 작업 소개에서 자연 친화적 잉크를 사용함으로써 일반 잉크 사용 시보다 탄소 배출물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이 작업은 해조류 잉크의 테스트 버전처럼 시도했지만, 앞으로 상업적으로 기존 잉크를 대체하기를 기대한다.
해조류 잉크를 이용해 만든 CID의 작업. 출처: https://castirondesign.com/work/patagonia

4. 종이 이외의 이물질 최소화

종이에 테이프나 이물질이 묻으면 재활용하기 힘들다.(집에서 분리수거 할 때도 테이프는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몇몇 행사용 POP를 제작할 때 접착제가 붙는 면적이 최소한이 되도록 구조물의 지기 구조를 설계한 적 있다.
책을 인쇄할 때도 웬만하면 후가공을 넣지 않는 편이 좋다. 후가공에 사용된 물질들이 재활용할 때 이물질로 분류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종이 코팅, 각종 아름다운 박도 이제는 사용하기 전에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자.

5. 그 외에 실천 가능한 방법들

재활용 과정에서 쉽게 걸러지지 않아 재활용률이 낮은 검정색 플라스틱을 만들지 않는다.(참고: https://www.bbc.com/korean/news-45095690.검정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사례로 영국 존 루이스 백화점이 있다. 이들은 검정 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불필요한 비닐 포장을 하지 않는다.
비닐이나 플라스틱 소재는 가능하면 종이로 대체한다.
재활용 제품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생각 가지지 않기!

이미지가 읽히는 방법

제작 과정에서 할 수 있는 노력도 있지만 고객에게 ‘친환경 캠페인’을 이미지를 통해 무형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숙제도 남았다. 기업 혹은 국가 차원의 환경 캠페인에 사람들이 크게 감명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했을 땐 아무래도 ‘남 일’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를 다루는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그룹들은 다양한 디자인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일러스트레이션과 적극적인 컬러 활용이다. 눈에 띄는 색상을 사용한 이미지는 콘텐츠가 쉽고 빠르게 재생산되기에 용이하고 그만큼 널리 퍼지기에 좋다. 또한 사람들이 문제에 쉽게 접근해 빨리 인식하고 받아들이기에 수월하다.
어떤 그룹은 그림이 환경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강력한 툴임을 인지하고 있으며, 효과적으로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일러스트레이션을 사용하고 있다.(It’s Nice That 참고.)
다양한 이미지를 활용해 기후 위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좌) 일러스트레이터 그룹 No Planet No fun의 작업 (우) 디자이너 그룹 adapt의 작업 
위와 같은 이유로 회사에서 진행하는 친환경 캠페인은 친근함을 강조하면서 캠페인 활동과 이미지가 고객에게 말을 거는 뉘앙스를 전달하고 싶었다. 캠페인에 참여하기가 쉽고, 재미있고, 나에게도 이익이 되는 활동이라고 느껴질 수 있도록. 그러면서 동시에 디자인 작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이미지가 다양한 매체 형식에 유연한 응용이 가능해야 했다. 이런 내용을 고려해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캐릭터 일러스트레이션 개발이었다.
현대백화점 친환경 캠페인 <그린 프렌즈> 일환으로 진행되는 <365 리사이클 캠페인>의 이미지 사진
이 캠페인의 비주얼은 계속 개발 중이다. 지금은 다소 평면적이고 제한된 행동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통해(하지만 너무 아동용처럼 보이지 않게) 캠페인 내용을 역동적으로 전달할 계획이다. 또한 고객이 친환경 실천 행동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캐릭터를 전개하려고 한다.

마치면서

디자이너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한, 적어도 나는 환경 문제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그 영향을 알고 일하는 것과 모르고 일하는 데에는 큰 차이가 있다. 기후 위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인간이 그에 맞춰 일과 삶의 패턴을 바꾸는 것이 변화된 세상을 사는 새로운 방법이라고 본다. 회사 업무를 통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환경과 지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지만, 이제 앞으로 작업할 때 환경에 대한 고민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디자이너 개인으로서 어떤 실천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동참을 권유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연구하고 관찰할 만한 주제를 찾고 있었는데 이것을 계기로 환경과 디자인에 대해 연구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 글을 끝까지 읽었다면 같이 지속 가능한 방법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말이 거창해 보이지만 위에 소개된 방법 중 한 가지만 실천해도 작은 한 걸음을 뗀 것이다. 아니면, 오늘 커피를 일회용 잔에 달라고 주문하기 전에라도 한 번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이 컵은 버려지면 어디로 가는 거지?
글쓴이 한경희
지역 문화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 현재는 대기업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하며 가끔 퇴근 후 디자인 프로젝트 그룹 '오늘의잔업'을 운영한다. FDSC의 자랑 팟캐스트 <디자인 FM>의 MC 2번으로 활약 중.
@hhohk
책임편집. 김현중
편집. 김나영, 김현중, 노윤재, 이예연, 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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