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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副詞)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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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스티븐 킹은 말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부사로 뒤덮여 있다(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adverbs)고. ‘매우’, ‘무척’ 등의 단어만 빼면 좋은 글이 완성된다고 한 작가도 있었지. 부사(사과 말고)는 어쩌다가 문장에서 가장 먼저 걷어내야 할 천덕꾸러기가 되었나.
귀에 인이 박이게 들었다. 좋은 글을 쓰려면 부사를 최소화하라는 조언을. 전공 교수도, 첫 직장에서 만난 꼬장꼬장한 선배도, 국내외 글쓰기 책조차도 예외는 없었다.
'달리 표현하면 부사는 민들레와 같다. 잔디밭에 한 포기가 돋아나면 제법 예쁘고 독특해 보인다. 그러나 이때 곧바로 뽑아버리지 않으면 이튿날엔 다섯 포기가 돋아나고... 그 다음날엔 50포기가 돋아나고... 그러다 보면 여러분의 잔디밭은 철저하게(totally), 완벽하게(completely), 어지럽게(profligately) 민들레로 뒤덮이고 만다. 그때쯤이면 그 모두가 실제 그대로 흔해빠진 잡초로 보일 뿐이지만 그때는 이미 으헉!! 늦어버린 것이다'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김영사(2013), p151
유혹하는 글쓰기 저자 스티븐 킹이 비유한 내용은 꽤 신랄하다. 나 또한 ‘호시탐탐 문장 안으로 파고드는 민들레의 침입’을  경계해왔다. 퇴고 시에는 가장 먼저 부사나 접속사부터 제거했다. 확실히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명료해지고, 주어와 동사가 한눈에 들어왔다.

부사를 향한 고백

하지만 부사가 품은 과장(?)과 생동감에 자꾸만 마음이 갔다. ‘무척, 설마, 참, 도무지, 정말, 결코’ 같이 마땅한 근거도 없이 무작정 감정을 끌어올리는 부사 말이다. 때로는 동사나 형용사에 세세한 뉘앙스를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그는 벌써 떠났다’와 ‘그는 떠났다’ 사이에는 엄연히 다른 정서가 흐른다. ‘어젯밤 일이 생각난다’와 ‘어젯밤 일이 자꾸 생각난다’ 역시 스며 있는 이야기가 다르다. 동사에 힘을 주기 위해서는 부사를 과감히 없애야 한다지만, 오히려 부사로 인해 동사 뜻이 선명해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습관이 무섭다고, 어제만 해도 문장 안에 자리 잡은 부사를 한참 만지작만지작하다가 결국은 다 뺐다. 글 버스에 승차 거부당한 채 덩그러니 남은 부사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글은 오랫동안 부사를 사랑했지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어떤 이의 고백이다. 부사와 거리 두기를 그만 멈추자는 작은 다짐이기도 하다.

글맛 살리는 부사

부사는 문장에서 다른 말을 꾸미는 역할을 하는 품사다. 주로 용언(동사, 형용사)을 수식하지만 다른 부사나 문장 전체를 꾸미기도 한다. 이 ‘꾸민다’는 게 참 미묘한 표현인데 동사나 형용사를 더욱 실감 나게 만들긴 하지만, 부사가 없어도 문장의 의미 전달에는 큰 무리가 없다. 많은 이가 부사를 군더더기, 사족으로 치부하는 이유다. 그런데 또 군더더기라고 하기에는 부사의 어휘가 참으로 풍부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부사만 해도 총 17,895개. 비율로 따지면 전체의 3.52%로 명사(335,057개, 65.82%), 동사(68,394개, 13.43%)에 이어 3번째로 높다.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동양’ 문화권에서는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표현하는 동사가 많이 발달했다고 한다(‘서양' 문화권에서는 명사 중심, 이를 수식하는 형용사 발달). 우리말 또한 동사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동사를 수식하는 부사 역시 함께 진화했다. 거기에 의성·의태어가 섞이고, 다른 품사에서 들어온 파생 부사가 더해져 비율에 영향을 줬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는데 부사는 우리의 생각을 부지런히 담아 날랐던 중요한 매개였던 것이다.
한국어 글맛과 리듬감의 근간에는 풍요로운 부사가 있다. 2만여 개의 부사를 한데 모아 엮은 『우리말 부사 사전』(도서출판 박이정)을 보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부사 사전으로 국어학자 백문식 씨가 3년에 걸쳐 20여 가지의 사전, 학술 단행본, 논문, 방언과 북한말까지 모아 정리한 결과다. ‘매우, 너무, 자주’ 등의 부사가 ‘맵다, 넘다, 잦다’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것도 책을 읽으며 알았다.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부사의 어원과 오용사례를 세세하게 기록한 자료로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그러니까, 부사는 죄가 없다.

부사에 무책임한 면이 있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의미를 구체적으로 한정해 글쓴이의 감정을 읽는 이에게 강요한다는 지적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글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글 쓸 때 부사를 최소화하라는 조언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먼저 튼튼히 세우라는 말 정도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장 안 부사를 싹 밀어내는 대신, 한국어 고유의 맛과 리듬감을 기분 좋게 즐겨 보자. 그간의 죄책감은 버리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수식한 부사에 가벼이 몸을 싣는 것이다.
싸이 4집 앨범 수록곡 중 ‘비오니까’라는 숨은 명곡이 있다. 비 오는 날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를 걸어버린(!) 내용. 거기 후렴구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비오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그랬어요.’ 부사로 버무려진 참으로 무책임한 가사건만 많은 이들의 연애사가 다양한 레이어로 차곡차곡 겹친다. 그러니까, 부사는 죄가 없다.
김선미 서울 연남동에서 기획 및 다자인 창작집단 포니테일 크리에이티브를 운영한다. 단행본 ‘친절한 뉴욕’, ‘친절한 북유럽’, ‘취향-디자이너의 물건들’ ‘베이징 도큐멘트’를 썼으며 한겨레 신문, 빅이슈 매거진, 월간 샘터 등에서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현재 1930년대 한국 근대 잡지에 관한 단행본을 집필 중이다. @midorism1143
책임편집. 노윤재
편집. 이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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