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DSC SEE-SAW: 지역에서 사이드프로젝트 매니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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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에게 거주지역은 업계환경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지역을 기반으로 일하는 디자이너들은 문화・정보격차, 지역의 상대적 보수성 등 다양한 이유로 커리어를 만들고 동료 디자이너와 연결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격차를 인식한 이후로 2020년 2월, FDSC는 지역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의 환경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지역 지부를 개설했다. 2020년 8월 지역지부를 운영하는 운영진 신선아, 정은지가 지역의 FDSC 회원과 함께 SEE-SAW라는 이름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꾸리고 지역 여성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무게로 서로에게 다른 시야를 보여주자

FDSC SEE-SAW는
여성 디자이너에게 〈지역〉의 의미를 묻는다.
〈중앙〉의 시각으로 〈지역〉 여성 디자이너의 현실을 다루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과 여성 디자이너의 관계를 재정의하기로 했다.
이 경험을 발신하기 위해 2020년 8월부터 12월까지 대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가 SEE-SAW 운영팀으로 모였다.
네 명의 디자이너가 지역 여성 디자이너의 일과 삶에 대해 듣는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다섯 명의 디자이너가 자신의 경험을 발화했다.
11월, 공간을 운영하는 디자이너 (이지영/부산)를 섭외해 강연을 진행했다. 이지영 디자이너는 부산 온천천 카페거리에서 서점 ‘책방숲’과 그래픽디자인스튜디오 ‘스튜디오숲’을 운영한다. 공간 운영자 관점으로 책방숲을 열게 된 계기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디자이너 관점으로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한 경험과 프로젝트를 해석하고 작업을 만들어가는 맥락을 공유했다.
12월, 지역을 선택한 사람들의 일과 삶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 온라인 대담 행사를 열었다. 대전에서 일하는 디자이너 (노은빈/대전), 대전 외 비수도권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최지선/광주), 대전과 서울을 모두 경험해본 디자이너 (박수연/대전), 대전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 (고윤아/대전)이 모였다. 1부 시간에 각자의 시야로 지역을 바라보는 관점과 경험에 대해 공유했고, 2부에는 지역을 주제로 한 밸런스 게임을 통해 이야기를 확장했다.
2020년 시소 프로젝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notion.so/fdsc/SEE-SAW-2020-c274078237e047629e5bf8270bd99ddb

1. 기획

시소 타보셨어요?

은지 기획 회의를 통해 지역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으로 활동 방향을 정한 뒤 “활동의 이름과 컨셉을 정해야 하지 않아요?”라는 말로 가벼운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했었잖아요. 의견을 주고받다 보니 후보만 몇십 개가 되었고요.
선아 맞아요. 우리 처음 만든 채팅 채널 이름이 ‘층층이 쌓자 충청팀’이었잖아요. 조각을 층층이 쌓아 올려서 견고해지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면서 라자냐, 크레페, 샌드위치, 레이어, 젠가 같은 단어를 쏟아냈던 걸 기억해요. 젠가는 무너질 때까지 블록을 빼는 게임인데 안 어울리지 않느냐, 그래도 균형이 중요한 놀이니까 괜찮다, 주거니 받거니 대화가 흐르다가 은지 님이 던져주신 ‘시소와 평균대’라는 단어 앞에서 멈춰 섰죠.
은지 처음에는 제가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추자는 의미로 ‘시소와 평균대’ 어때요? 하고 던졌는데 시소 단어의 유래를 찾아보다가 위아래로 움직이며 주변을 보고(see) 보았다(saw) 라는 말도 있고, 서로 밀고 당기면서 톱을 켜는 소리(어기영차)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를 알게되면서 두 가지 의미 모두 우리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잖아요. “이거다!” 싶어서 다른 팀원 분들께 공유했는데 시소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나누면서 의미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고요. 선아님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무게로 서로에게 다른 시야를 보여주자’라는 슬로건으로 정의해주셨던 것도 좋았어요. 우리가 시소(SEE-SAW)라는 단어를 프로젝트명으로 선정한 이유와 활동 방향성이 잘 녹아 있는 문장이라 볼 때마다 감탄해요.

2. 시작

세상에서 제일 멋진 시소를 만들어야지

선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회원들과 처음 기획해보는 장기 프로젝트라니 신이 났어요. 팀원들과 첫 모임을 하기도 전에 이미 두 페이지가 넘는 빽빽한 회의록 몇 개를 가지고 있었죠. 주제를 조금씩 좁혀 나갔어야 하는데 모든 의견을 쌓아 올리면서 불려 나가기 바빴던 것 같아요. 기획이 점점 무거워지는 모양이 꽤 그럴듯해 보였어요. 그렇게 만든 첫 기획은 하루 빠듯하게 여섯 시간씩, 매주 주말, 한 달간의 진행이 필요한 무시무시한 타임라인을 가진 녀석이었죠. 전 그때 순진하게 쾌재를 불렀어요. 와 우리가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결국 정리해냈다. 이건 대박이다. 이제 세간의 주목을 받을 일만 남았다. 그런데 이제 어떡하지?
은지 주제별로 연사와 참여자를 따로 섭외하는 구성이었죠. 디자이너의 협업 이야기, 막막할 때 어떻게 돌파구를 찾는지, 공간을 만드는 이야기, 연봉, 업계환경 개선 등… 다루고 싶은 주제도 꽤 많았고요. 거의 디자인 캠프 수준으로 2주 합숙으로 진행해도 부족할 기획이었죠. 지금 생각하니까 어마어마했네요! 왜 그땐 몰랐을까요?

시소가 원래 이렇게 움직이는 거 맞나요?

선아 다루는 주제가 너무 많고 프로그램 구조도 복잡해서 기획을 정리해놓고도 자주 헷갈렸어요. 다솜 님이 “기획안에서 개인적으로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우리도 이렇게 어려워하는 기획이면 참여자들은 오죽할까 싶더라고요.어려운 기획을 붙들고 한 문단 한 문단 서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면서 정리를 거듭했어요. 한 번 회의를 시작하면 끝이 나질 않았죠. 회의를 마칠 때쯤엔 목에서 쇳소리가 나고 귀에서 팔팔 열이 올랐어요. 나중엔 누워서 회의하는 팀원도 있었잖아요, 누워있는 티 안 내려고 노트북도 같이 돌려 두셨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죠. 머리카락이 왼쪽으로 자라긴 힘드니까요.
은지 중력을 거스르는 모습에 저희 모두 빵 터졌었던 게 기억나요.
선아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지만, 매주 주말 저녁 시간대에 회의가 기약 없이 길어지는 건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일이더라고요. 팀원들이 프로젝트에 들이는 시간과 방향을 예측할 수 있도록 회의록 템플릿을 만들고, 은지 님과 팀 회의 전에 미리 만나서 회의 안건을 정리하기로 했어요. 회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말 하기, 타자 빨리 치기 등의 기술을 연마하기도 했고요. 꽤 효과가 있었어요.

3. 위기

시소 괴담 : 모두가 떠나고 난 밤에도 시소에서 소리가 난다던데

선아 (심약자 주의) 그런데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돌아간 밤에도 삐그덕 삐그덕 시소 소리가 나는 곳이 있었다던데…...
은지 맞아요…... 회의 끝나면 다시 안 볼 것처럼 인사하고 헤어져 놓고 결국은 다시 몰래 노션(회의문서)에 접속했다가 서로를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랐잖아요. 아니 이 시간에 여기 나 말고 누가…?
선아 처음 동시 접속했을 때만 당황스러웠지 회의 끝나고 다시 만나는 것도 금세 익숙해지더라고요. 나중에는 팀 회의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줌(화상회의 앱)을 다시 켜게 됐잖아요. 화면 너머 은지 님의 창백한 얼굴이 가끔 꿈에 나와요. 서로 아무 말 없이 고요하게 커서만 움직이던 순간도요.
은지 저희가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시점이 코로나19가 가장 심할 때였잖아요. 그래서 운영팀 모두가 대전에 있는데도 대부분의 회의를 온라인으로 진행해야 했었고요. 석 달 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매번 온라인으로 만나다 보니 함께 한다는 감각이 점점 사라지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것 외에도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서 각자 피로도가 쌓이고 있었고요.
선아 그래서 회의가 끝나고도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 프로젝트,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발을 굴러도 시소가 올라가지 않을 때

선아 어느 날 팀 회의를 마치고 줌 링크 창을 내렸는데, 기영 님께 슬랙 메시지가 와 있더라고요. “다들 많이 힘들어 보이네요. 시원한 커피 마시면서 해요.” 팀원 모두에게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주신 거였어요. 팀 회의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본질적인 문제가 해소되는 게 아니라는 것, 팀원들 모두 프로젝트를 버거워하는 상황이라는 걸 저도 알고 있었어요. 회의록에 ‘힘들고 지칠 때는 꼭 시그널을 보냅시다’라는 항목을 넣어두었는데, 그 항목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다른 팀원들도 말하지 못했을 수 있겠다 싶었죠. 기영 님이 부드러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의견을 주신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브레이크를 걸고 이 프로젝트의 목적부터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죠.
은지 만약 예전의 저였다면 ‘다들 지쳤으니까 내가 다른 사람의 몫을 더 맡는 방법을 써서라도 프로젝트를 빠르게 완료하자’라는 결론을 내렸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는 조금 다른 시점으로 프로젝트를 다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우리 프로젝트 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간 작성했던 회의록을 살펴보기 시작했고 모든 과정을 함께 동기화하면서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모두가 에너지를 함께 써야 하는 구조를 만들었던 게 피로감의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어요. 기획부터 운영까지 모든 과정을 전체의 동의를 구하면서 함께 고민하는 구조였잖아요? 그래서 전략을 바꾸기로 했어요. 각자가 맞는 역할을 온전히 가져갈 수 있도록 하자. 각자가 잘해줄 것을 믿자. 그리고 나는 시야를 넓혀서 전체 프로젝트를 최대한 가볍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자. 시소 맞은편에 앉아있는 동료를 들여다보게 된 거죠. 저 사람이 지금 어려워하는 이유는 뭘까? 저 사람에게 난이도가 높은 일이 주어진 건 아닐까? 그럼 어떤 일을 맡았을 때 즐기면서 할 수 있을까? 지금 저 사람이 처한 상황에서 낼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얼마 정도일까? 이런 고민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전체의 온도를 높이는 것 보다 각자의 온도를 파악하고 그 안에서 재미있게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눈앞에 놓인 프로젝트의 완성에 집중했었는데, 이제는 함께 하는 동료들과 지치지 않고 오래 일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게 된 거예요. 프로젝트 매니징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는데 동료들과 함께 오래 일하고 싶다는 감각을 느낀 게 처음이었어요.
선아 은지 님과 만나면 헤어지기 직전까지 이런 얘기를 했었죠.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얼른 건너지 못하고 말을 잇느라 서로를 붙잡고 있던 날이 생각나요. 그때 이번 신호에 빠르게 건너가지 않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면서 은지 님과 더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획을 수정하자는 결론을 맺고 헤어졌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이 속도로 걷는 게 맞다는 생각하면서요.
은지 FDSC 운영방침을 보면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더 오래 더 잘 일할 수 있도록 돕자, 더 건강하고 윤리적인 환경을 위해 노력하자’는 내용이 있는데요. 실제 프로그램들도 운영방침을 고려해서 진행되고 있잖아요? 프로젝트 매니징을 하기 전 FDSC의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제 안에 좋은 경험이 쌓이고 새로운 관점이 생겨난 것 같아요. 또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과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내밀한 고민을 나누면서 팀원들에 대한 애정도 높아졌고요. 그래서 더 오래 함께 일할 수 있는 구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 것 같아요.

4. 전환

시소 유령이 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은지 고민 끝에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던 동료들과 재미있게 오래 일할 수 있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기획의 무게를 덜어내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대하드라마 같았던 기획을 주말 단편 드라마 느낌으로 대폭 축소하기로 결정했고요.
선아 연사와 참여자를 따로 모집하는 게 어렵다면 우리가 초대한 모든 분을 연사로 부르기로 했었죠. 여러 날에 걸쳐 기획하지 않고 하루 두 시간짜리 프로그램으로 무게를 조절했어요. 안전한 분위기에서 깊게 이야기 나누고 즐겁게 헤어지는 걸 목표로 세우고, 네 분의 디자이너(IT 기업의 인하우스 디자이너, 서울과 대전을 모두 경험한 디자이너, 디자인 학부를 재학 중인 예비 디자이너, 대전 외 지역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에게 경험 공유를 부탁드렸어요.

우리가 먼저 재미있게 놀면 친구들이 모일까요?

선아 연사 섭외가 끝나고 오랜만에 팀원들과 오프라인으로 모였어요. 우리가 모은 사람들과 어떻게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죠. 지역에서 일하는 경험에 대한 주제를 크게 벗어나지 않되 너무 무거운 분위기로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같이 밸런스 게임을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고 “이거다!” 환호했어요. 밸런스 게임만큼 시소 프로젝트랑 잘 어울리고 대화 참여 유도가 쉬운 방법이 또 있을까 싶었죠.밸런스 게임을 준비하면서 서로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어요. “지역에서 일하면서 어떤 얘기까지 들어보셨어요?”, “어떤 상황과 질문이 우리를 불편하게 할까요?” 완성된 밸런스 게임에는 “오 이거 되게 서울 디자인 같네요” VS “서울 디자인처럼 해주세요” / “디자인한다면서 서울엔 언제 와?” VS “너는 지역에서 일하니까 온라인으로 참여할래?” 같은 질문이 포함되었어요.
시소 밸런스 게임
질문을 만든 우리도 선뜻 고르기 쉽지 않았죠. 밸런스 게임의 진짜 재미는 이 밸런스 선택지에 ‘최선’이 없다는 전제를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게임을 통해 새로운 시소를 세울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할 수도 있는 거죠.
은지 밸런스 게임 진행을 다솜 님이 맡아주셨잖아요. 진행을 위한 화면도 만들어 오기로 하셨고요. 그때 다솜 님이 학교를 병행하면서 회사에 다녔을 때라 시간이 많이 없었을테고 가볍게 질문 정도 쓰여 있는 화면을 준비해 오실 거라고 예상했는데 이게 웬걸? 선아 님이 성냥개비로 만드셨던 시소 키비주얼을 활용해서 밸런스 게임을 만들다니! 덕분에 당일에 참여한 패널분들과 밸런스 게임을 진행할 때 더 즐겁고 편한 분위기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밸런스 게임을 진행하면서 서울 디자인처럼 해주세요! 라는 선택지를 보고 “서울 디자인 같은 건 뭘까요? 그럼 지역에서 하는 디자인은 뭐가 다른 거죠?”라고 역으로 질문을 던진 분도 계셨는데 평소에 당연하게 듣던 이야기들에 함께 의문을 던지는 과정이 통쾌하게 느껴졌고, 다양한 상황을 두고 대화하면서 ‘이걸 나만 이상하게 느낀 건 아니었구나, 우리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라는 걸 공감할 수 있어서 힘이 되는 시간이었어요.
시소 경험공유회 中

5. 회고

시소를 탄 날엔 일기를 써야지

은지 프로그램을 마친 후 감동이 식기 전에 바로 운영팀원들과 회고를 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선아님이 회고 템플릿을 준비해 오셨잖아요. 행사 전체를 회고하는 것으로 가볍게 시작해서 참여해주신 연사분들에게서 감명받았던 순간을 이야기하고 우리의 프로젝트 과정 중 즐거웠던 점, 아쉬웠던 점을 나누고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박수 보내기 시간을 가지면서 서로를 독려하며 마무리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저랑 선아님이 가장 자주 나눴던 고민이 우리를 포함한 운영팀 4명이 지치지 않고 온도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힘들면 힘들다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였는데 그런 고민을 반영해서 ‘날아가기 전에 빠른 회고를 해봅시다’라는 이름으로 회고 템플릿을 가져와 주시고 자연스럽게 흐름을 만들어주셔서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마지막을 서로에 대한 감사로 박수를 보내며 마무리하자고 말씀해 주시는 걸 보며 정말 선아 님다운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outro

키와 체구와 무게가 다른 두 사람이 마주 앉는다. 상대를 위로 올리기 위해 뒤로 몸을 젖혀 중심을 바꾸고,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상대가 쉽게 들어 올릴 수 있도록 적당한 힘을 유지하며 발돋움한다. 몸이 부웅 떠올랐다가 땅으로 내려앉는다. 내려와 앉을 때 서로의 몸이 지나치게 충격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시소는 힘의 균형을 맞추는 놀이다. 서로가 가진 힘의 크기를 반드시 인식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서로의 힘을 알아차리는 것, 상대의 힘으로 올라가 나의 힘으로 내려오는 것. 다른 시야를 경험하기 위해 시소에 오르지만, 힘의 균형이 오고 가는 동안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것은 결국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얼굴일 것이다.
서로의 무게를 느끼며 올라가고 내려간다. 발을 구르며 서로의 힘을 감각한다. 마주 보이는 친구가 올라갔다가 내려간다. 보였다가 보이지 않는다. 가끔 엉뚱한 곳에서 힘을 줘버려 균형을 잃고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친구의 놀란 얼굴을 보며 웃음이 터져 나온다. 다시 힘을 빼고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힘에 집중한다. 마주 보는 사람의 행복한 표정, 함성 소리를 들으며 시소를 탄다. 놀이가 끝나고 하나둘 놀이터를 떠난다. 나도 집으로 돌아간다. 오늘의 놀이는 끝이 났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이 쓸쓸하지 않은 이유는 내일이 되면 또다시 하나둘 놀이터로 모일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손잡이 맞은편의 친구를 보았기 때문이다.
시소를 타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자는 결심은 시소가 움직일 수 있는 땅을 만들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불균형한 터를 다지고 새로운 무게중심을 세워, 처음에 많은 에너지를 들여서라도 시소를 움직이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사 한가운데에서 손을 잡았다. 기울어진 지형에서 지역 여성 디자이너가 어떻게 발을 지지하고 서 있는지, 혹은 미끄러지고 있는지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질문을 던졌다. 2020년 12월, 우리는 9명의 지역 여성 디자이너가 놀 수 있는 터를 만들어냈다. 우리가 만든 놀이터에서 시소는 균형 있게 오르내렸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무게로 서로를 들어 올렸다 내려놓으며 오래 마주 보았다. 마주 앉은 얼굴을 보며 알았다. 시소를 타는 동안 다른 시야를 경험하고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다면, 시소를 만들고 함께 노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시소가 설 수 있는 땅도 늘어날 것이다.
2020년 SEE-SAW 경험공유회에 연사로 참가했던 최지선, 박수연 디자이너가 2021년 시소 프로젝트 팀원으로 합류했다. 5명의 디자이너가 인터뷰레터를 매개체로 지역 여성 디자이너와 창작자들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신선아 대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 그래픽 디자이너. 2015년부터 대전 페미니스트 문화기획자 그룹 BOSHU에서 일하며 비혼 여성 커뮤니티 '비혼후갬'을 운영한다. FDSC에서는 대전지부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 유럽이라는 중심, 서울이라는 중심, 이성애라는 중심에서 벗어난 곳에 살며 주변의 관점으로 중심을 비판적으로 관찰한 결과를 작업에 담으려 한다. 이곳에서 나만이 '하이라이트'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으며, 대전이라는 ‘주변'에서 디자이너로 살고 있다. @ssuung_e
정은지 대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사회적협동조합 혁신청에서 활동가이자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TTBW을 운영하며 웹 기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사회문제와 지역의 일에 관심이 많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프로세스를 다듬는 일을 즐긴다. FDSC에서는 대전지부와 페미니스트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페디소를 운영하고 있다. @eunzyjeong @tangtangbowl
책임편집. 이예연
편집. 김나영, 김현중, 노윤재, 이예연, 하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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