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짓것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 병실에서 병문안 오신 엄마의 지인분들을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게 사과 다섯개를 연이어 깎고 있었다. 평생 엄마의 뒷바라지만 받다 이렇게 많은 과일을 연속으로 깎아본 것도 처음이었다. 접시 위에 가득 모든 사과가 뽀얀 살을 드러냈을 때, 과도가 익숙지 않은 나의 손가락에는 옅게 칼에 베인 자국이 여러 개 남았다. 이 짧은 병간호를 하며, 나는 베인 상처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당시 손가락의 상처는 하루 만에 아물었지만, 마음엔 영원한 생채기가 났다. 엄마의 악성종양이 잘 제거된 후였다. 그렇게도 바라던 엄마의 회복인데, 왜 내 마음은 아직도 쓰라릴까? 그 의문이 계기가 되어 창업을 결심하게 되었다.
결심한 후에도 한동안 행동으로 옮기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병간호를 통해 ‘삶’의 소중함을 알았지만, 차츰 그 기억을 잊고, 매달 급여가 나오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정된 직장생활에서도 불쑥 ‘언제까지 이렇게 야근하며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언제든 가족이 아프게 된다면 간병인으로 소환될 내 삶이 정말 불안했다. 그러던 중 조직개편의 이슈를 만나게 되었고, 그 상황으로 인해 외면하던 창업 결심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 다시 그 햇살 좋은 병실의 엄마와 내가 떠올랐다. 앞으로 다가올 돌봄의 무게로 인해 “무기력하게 살지 말자”라고 이야기하듯 생채기 났던 손가락을 보며, 적극적으로 대처할 방법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가족 병간호로 백수가 되었던 것처럼, 퇴사로 인해 회사 타이틀과 직급이 없어진 아무개가 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창업이라는 꿈을 실행하는 아무개가 되었다는 점이다. 바깥은 고요한데 마음속은 거센 바람이 불어 돼지도 날아갈 듯한 그런 기운이 가득했다. 이 기세라면 불가능할 게 없어 보였다. 그래 까짓것 해보자.
일하는데, 논다니!
“아유 우리 애는 회사를 그만두고 놀고 있으니 애가 생겼어.”
“엄마! 나 일하고 있거든!”
엄마는 창업 초기 2년 동안 나를 보며 매번 논다고 했다. 외부미팅이 있지 않은 한, 집에서 사업을 구상하고 사업계획서로 방향과 가설을 정리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니 엄마의 눈엔 내가 놀아도 아주 편하게 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일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 위한 체질 개선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디자이너로서 눈에 보이는 작업을 하는 것이 제일 잘해왔던 일인데, 어떤 걸 눈에 보이게 할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이니 멋지게 만드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시기였다. 순진하고 멍청한 현실 모르는 질문일지라도,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부터 고민했고, 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마음속 답과 동기는 스스로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내가 가장 가치를 두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형태의 삶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는가.
실패하더라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을 그런 가치 있는 일인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선택은 아닌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던 중 읽었던 책, 『나 홀로 부모를 떠안다』는 더 적절한 질문을 찾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간병문제를 다루었던 책이었다. 읽고 있으면 잠시 고령화된 미래사회를 다녀온 것 같았다. 특히, 가족 병간호를 통해 사회에서 격리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읽을수록 마음 한쪽이 무겁고 어지러웠다. 돌봄시스템의 문제 해결이 없는 한, 다시금 독박간병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처음엔 슬픔이, 다음엔 분노가 다가왔다. 가슴의 불꽃이 점점 강해지면서 결국 스스로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단단해졌다.
질문을 통해 디어라운드의 존재 이유를 다듬어갈 수 있었다. 2015년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찾아온 간병의 삶은 디어라운드를 통해 헬스케어와 요양산업의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열망을 갖게 했다. 경력단절을 겪어야만 하는 보호자, 특히 여성에게 가장 혁신이 필요한 시장이라고 보았다. 대부분 한 가지 이상의 질환을 앓게 되는 초고령화 사회에서 삶의 질이 나빠지기 전에 건강을 관리하고, 병원 접근성을 높이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정보를 관리함으로써 보호자가 온전히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이 과정만큼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여러 시련이 3년간 있었지만, 질문을 던지며 글을 썼던 이 시기는 디어라운드를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피식
“피식”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할 때 일에 매몰되어 심각하게 책상에 앉아있으면, 회사 동료 누군가 다가와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웃게 해 주었다. 특히 신입사원일 때 만났던 동기들은 잊을 수 없는 격려와 웃음을 주었고, 업무가 익숙지 않아 여러 실수가 날 때도 서로 말하지 않고도 네 맘이 내 맘이라고 이해해 주었다. 끈끈하지만 느슨했던 연결들이 매번 성공할 수만은 없는 우리의 길에 수많은 실패로 함께 울어주기도 하고, 아파해주기도 하고, 소소한 웃음을 나누게 해 주었었다. 새로 시작하는 모든 일엔 수많은 실패가 너무나 당연한데, 나의 성장 과정엔 언제나 작은 일상을 통해 도닥여 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창업이라는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또는 시시껄렁하게 나눌 수 있는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너무 고팠다. 또 창업과 함께 임신하게 되면서, 호르몬의 영향으로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더 심해졌었다. “내가 뭐라고 이 일을 벌였나?”라는 생각과 함께 자기혐오에 빠지기 일쑤였다. 창업과 임신이라는 아주 특이한 상황에 복합적으로 놓이다 보니, 공감대를 갖는 사람을 만나기가 정말 어려웠다.
‘구글 엄마를 위한 캠퍼스’(이하 줄여서 구캠)는 창업 교육이지만 그 대상이 아이를 가진 부모였다. 임신한 나에게 찰떡같이 딱 들어맞았다. 구캠에서 만난 부모 창업가를 주 1회씩 한 달간 만났었는데, 모두 아이 돌봄이라는 무게에 고민이 많았지만… 창업에 대한 열망이 많은 초기 창업가들이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공통된 주제들이 많았다. 아이와 함께 일하면서 생기는 여러 돌발상황에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고, 창업 과정에서 필요한 실용적인 팁부터 불안정한 생활에 심리적인 지지층이 되어 주었다. 지금까지 만나며 실패 경험부터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성장하는 과정 모두를 생생하게 나눌 수 있다. 이미 성공을 이룬 창업가들의 성장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도 더 큰 울림과 배움을 얻는다.
학창 시절 매번 나를 점수 매겼던 시험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의 느낌 - 포근함, 즐거움, 간절함, 애씀… 모두 나의 가슴에 깊이 남아있다. 이 창업의 과정이 돌이켜 생각했을 때 피식 웃음이 나면 좋겠다. 그런 일상의 행복이 있다면 성공의 여부와 상관없이 후회 없이 살았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정되셨습니다”
1달간의 창업 교육을 수료하고 나니, 이미 임신중기를 넘어 후기로 접어들어 배가 빠르게 불러왔다. 임신·출산으로 무기력함을 절절히 경험할 때쯤, 일할 수 있는 시간 제약이 많았다. 임신 후기에는 일주일에 고작 4시간 정도 책상에 앉을 수 있었다. 대표로서 자본 마련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기 때문에 출산 직전까지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데 온 힘을 다했다. VC투자는 문턱이 너무 높았고, 나의 임신 여부가 중요한 결격사유가 되지 않는 정부 과제를 찾아 열심히 사업에 대한 미래를 적어나갔다. 그 간절한 시기를 통해 여러 지원과제에 선정되었다. 최근에는 4번이나 떨어졌던 R&D 지원사업에도 선정되었다. 선정과정을 통해 디자이너로서의 조현주가 아닌 시니어 헬스케어 스타트업으로서의 디어라운드를 알릴 수 있었다.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 기술혁신형사업 선정을 시작으로 2019년 청년창업사관학교 서울 9기 선정, 서울시 예비사회적기업 인증, 기술보증기금 소셜벤처 인증, 강남구청 지역특화사업 참여기업, 2020년 벤처인증, 기업부설연구소 설립, 시드투자, 강남구청 지역특화사업 주관기관, 소셜벤처허브 it'em 선정, K-ICT 멘토링 14기, 강남구 감사장 수상, 2021년 한국 수력원자력 소셜벤처 2기 성장지원사업 선정, 창업성장기술개발 디딤돌 선정, 라파스10x 스타트업엑스 미래 유망주 트랙 선정… 3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변화들이었다.수많은 투자자들이 대표의 임신을 아주 큰 리스크로 이해한다. 9 to 6 업무수행 방식을 고수했다면 이루지 못했을 성과들이었다. 때로는 한낮에, 때로는 새벽에 형상도 없던 뭉게뭉게 떠다니는 꿈을 적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고객을 만나게 되었다. 경력단절 시기로 불안감을 주었던 임신·출산기는 아이의 탄생만큼 새로운 사업과 나를 탄생시켰다. 새로운 파트너들을 만날 수 있었고, 정말 어려웠던 시드투자도 유치되고, 여러 투자자에게 우리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Venture Capital 약어로 자금이 부족한 스타트업에 주식투자 형태로 투자하는 기업
정부에서 출연한 재원으로 기업이 기술개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
시드투자는 맨 초창기에 받는 투자 규모를 말하며, 각 투자 단계는 시드, Series A, B, C, D...의 단계를 거쳐 사업이 확장된다.
꿈? 꿈!
디어라운드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면, 미팅 도중 울컥 울음이 쏟아지기도 했다. 채용을 위해 2~3시간을 여러 번 브리핑을 해드리는 미팅도 있었다. 모든 만남이 마음을 전하는 과정이었다.
“여성에게 치중된 돌봄의 무게를 나눌 수 있는 사업”
“돌봄 근로자가 행복하고, 돌봄 받는 환자도 행복할 수 있는 사업"
“인간답게 늙어갈 수 있도록 모든 결정에 가이드를 해주는 사업"
“노인이 아닌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건강관리를 지원하는 사업"
“헬스케어에서 여성 소비자의 불편감을 해결하는 사업”
우리가 바라보는 시장과 사업에 대한 마음을 전하다 보면 함께 마음이 움직이는 분도 계셨지만, 너무 이상적이라는 피드백도 받는다. 그럴 때면, “그래, 너무 이상적이지.”라고 낙담할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멈췄다면 지금의 디어라운드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불가능함에 가둬 생각하면 그와 다르지 않은 미래가 계속 이어지겠지만, 변화를 가슴에 품는 순간 결국 비슷한 방향으로 미래가 조금씩 자라난다는 것을 3년간 경험해왔다. 나의 간절함을 응원하듯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느슨하지만 튼튼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인터뷰하는 이유도 모두 소중한 기록들이 우리와 꿈을 함께 만들어갈 사람들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만남으로 불가능했던 꿈이 현실이 되는 미래가 곧 오지 않을까?
안녕하세요. 디어라운드입니다.
디어라운드를 시작하며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잘 모르는 사업을 단번에 성공적으로 진행할 순 없다는 사실이 너무 명확했고, 임산부의 몸으로 혼자 영업과 모객을 모두 할 수 없었다. IT 기반의 업을 10년 넘게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플랫폼을 만들었다. 요양산업을 스터디하기엔 아주 적절한 아이템이지 않았나 싶다. 8천 여개의 요양 시설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보니, 내가 나이 들어 살고 싶은 요양 시설은 손에 꼽혔다. 요양병원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셨던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노인의 삶은 정말 인간답게 살 수 없는 것일까? 이 과정에서 “존엄케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고, 노년의 인간다운 삶이란 힘들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이트를 구축해놓아도, 실제 고객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요양등급을 받자마자 보건소의 가이드를 듣고 시설을 정하기 때문에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기존 폭행 및 결박 등 요양 시설에 대해 좋지 못한 인식으로 인해 입소에 대한 반감이 심했다.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상황이 되어서야 가게 되니, 요양 시설을 이용하는 고객이 우아하게 온라인검색을 통해 양질의 정보를 찾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시니어 헬스케어 스타트업으로 여러 군데 소개하러 다니던 중 송파 사회적경제센터와 인연으로 소셜벤처의 행보를 시작할 수 있었다. 10년 경력의 베테랑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병원 동행 서비스를 론칭하게 된 것도 이때였다. 시장조사과정에서 요양 시설을 방문하면 시설 내 어르신들이 평소 10알이 넘는 의약품을 처방받아 드셨고, 장기 복용이 될수록 알 수 없는 부작용에 시달리기도 했다. 관리가 잘 안 되면 시설에 입소해있어도 응급 차량을 타고 응급실에 가는 일도 잦았다. 병원 동행 서비스를 통해 좀 더 일찍 의료접근성을 해결한다면, 조기에 병을 진단하고 관리해서 삶의 질이 나빠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기존 간병인 서비스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의료진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전문가를 통해 제공하고, 병원과 관련된 모든 스케줄과 건강정보를 관리하고 있다. 특히, 부모님의 건강을 바라지만, 너무 바빠 신경 쓸 틈조차 없는 보호자들이 병원 동행 서비스를 만족하며 이용해 주신다. 초기엔 인력 부족으로 나도 병원 동행을 직접 가야 할 일들이 자주 있었는데,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 입장에서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 다양한 필요들을 포착하게 되었다. 고객과 첫 만남을 만들어 내기까지 수많은 여정이 있다는 데 놀랐고, 고객과 서비스 여정을 함께 하면서도 실제 고객의 이야기를 보고 듣지 않고서는 정말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느끼게 된 값진 경험이었다.
모든 것이 멈출 때
2020년의 팬데믹 상황에 우리는 직격타를 맞게 되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있었지만, 정말 감당이 안 되는 이슈였다.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가 패닉 상태였고, 지금도 그 혼란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병원 동행은 쉬운 노동으로 취급되지만, 동행 중 여러 가지 이벤트들이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에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감염병 환자가 많은 병원에 드나드는 일이니, 기저질환을 가진 노인고객뿐 아니라 함께 동행하는 전문가들에게도 최악의 상황이었다. 우리는 바로 서비스의 모든 중단을 결정하고, 전문가와 고객을 모두 보호하기로 했다. 커다란 결정을 하게 된 뒤로도 모든 여정을 접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마음속에 황량한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팬데믹이라는 강력한 장애물을 만났지만 돌봄은 더 이상 가족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서비스를 진행할수록 더욱 확신이 들었다. 결국, 돌봄 자체가 외주 및 용역화된다면, 다양한 의료기관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도 결국 그 관리를 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데 이른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인구 구성의 변화상 가족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고 말았다. 그렇다면 한 개인의 건강 정보를 얼마나 잘 관리 해 줄 것인지가 돌봄 서비스의 질을 좌우할 것이라고 보고, 우리는 데이터를 잘 관리해주고, 커뮤니케이션을 잘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시국으로 인해 직접 대면을 못 한다면, 우리가 고민해오던 데이터와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할 수 있는 방향을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코로나19로 혼란스러울 정도로 건강 관련 정보와 제품이 넘쳐나고 있었다. 우리는 생활 건강 수칙만큼 확실하고 비용이 들지 않는 방법을 잘 알고 있지만, 항상 좀 더 빠르고, 좀 더 드라마틱한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 과정에서 불확실한 정보가 유통되고 그것이 사람들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부모님과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여러 가루를 대신 사드리게 되었다. 노니가루, 새싹보리가루 등등 10가지 이상의 가루를 보며, 식품으로 과다 섭취할 경우 간에 무리가 갈 수 있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구매 욕구를 잠재울 순 없었다. 불안의 시기에 바른 정보를 가이드 해줄 수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서비스 셧다운 기간동안 신규사업개발에 몰입했고, MVP(Minimum Viable Product)로 서비스를 만들어 200명을 대상으로 면역력 증진과 영양, 식단, 운동, 심리 코칭을 진행해보았다. IT 중심의 비대면 서비스로 모든 과정이 이뤄지다 보니 아이디어 단계의 타깃이었던 고령자보다 MZ세대에게서 훨씬 반응이 좋았다. 10개 이상의 영양제를 복용하며 겪는 부작용을 바로 잡아드렸다. 영양제 섭취는 이제 10가구 중 8가구가 구매 경험이 있어 보편적인 서비스가 되었다. 1명의 약사 상담으로 진행해본 MVP를 통해 효율화된 프로세스를 개발하고 있다. 추가로 MVP로 진행되었던 식단 코칭은 코로나로 폭식과 운동 부족으로 살이 찐 분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는데, 평균 2kg의 체중감량에 성공했다. 비만은 우울증부터 여러 합병증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므로 질환 관리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멈춘다는 건,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해주었다.
익숙하게, 실패
멈춘다는 것은 두렵고, 불안하다. 엄마의 병간호는 디자이너로서 일밖에 모르던 내 삶을 멈추게 했고, 이기적인 나를 발견하게 했다. 그리고 그 분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했다. 제대로 된 돌봄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한, 결국 평범한 직장생활을 열심히 해간다고 한들, 가족이 아프면 결국 많은 일을 포기하고, 또다시 가족병간호의 노동 주역이 되어 있을 미래가 두려웠다. 엄청난 효녀라서가 아니라 이기적인 딸이었기에 시작한 일이다. 어차피 이 노동을 외면할 수 없다면 미리 배우고, 나만의 비전을 바탕으로 새롭게 만들어가고 싶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실패하더라도 그 또한 당연하다. 너무 악을 써서 끌고 갈 필요도, 실패했다고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다시 고민해보아도, 그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울 방법은 현실에 직접 부딪히는 것뿐이었다.
모든 걸 멈추게 하는 순간들이 더 깊은 동기를 유발하고, 그래서 오늘도 익숙하게, 실패를 외친다.
실패! 다시 시작해볼까?
조현주
브랜드와 플랫폼 전문 16년 차 디자이너. 어머니 간병 경험을 바탕으로 경력단절 위기를 겪으며, 〈디어라운드〉를 창업하였다. “넘어지고 느리게 가더라도 멈추지 말자” 다짐하며, 여성에게 치중된 돌봄의 무게를 헬스케어의 변화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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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편집. 김나영
편집. 김나영, 김현중, 노윤재, 이예연, 하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