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각 아이돌 그룹의 로고는 형태가 더 잘 보이도록 임의로 백색 바탕에 흑백 형태로 가공했습니다. 흑백으로 가공할 경우 형태가 보이지 않는 로고만 색을 살렸습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아이돌, 요즘은 K-POP이라고 대체되어 불리는 일종의 문화현상을 좋아한다. 내 휴대폰에 깔린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의 재생목록 대부분은 아이돌이 부르는 대중가요다. 비트가 빠르고 비장한 노래를 출근길에 재생시키면 만원 전철이 활주로로 바뀐 듯한 기적이 일어난다. 이 지하철이 나를 더 큰 세계로 데려다줄 것만 같다. 물론 그 끝에는 사무실이 기다리고 있지만…
청소년 시절로 대변되는, 덜 성숙한 여자 아이들이 열광적이고 무분별하게 좋아하는 분야로 여겨졌던 이 장르는 시간이 흘러 이천 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며 세간의 평가가 바뀐듯싶다. 동방신기와 빅뱅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고 2PM과 샤이니는 20대 ‘누나’들의 로망이었다. H.O.T.와 젝스키스를 좋아하던 그 ‘여자 아이들’이 자라고 나이를 먹어 구매력을 가지게 되며 그 시장규모도 성장한 거다. 2010년대를 지나 이 장르는 더욱 덩치가 커지고 심지어 글로벌해진다. 덕분에 나도 누군가 ‘무슨 노래 들어요.’ 묻는다면 ‘음… 박효신, 아이유, 그리고… NCT 127이요’1)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된 거다.
K-POP, 그러니까 코리안-팝이라고 퉁쳐 부르지만 사실 이 장르의 내부는 더 세밀하고 세심하다. K-POP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아이돌 그룹은 그 어마어마한 그룹의 숫자 만큼 컨셉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을 모아놓고 그들을 묶어 상품으로 만들고 거기에 컨셉을 부여할 때 수반되는 디자인적 과제는 아마도 브랜딩이다. 전방위적으로 잘 다듬어내 이 과열된 시장에서 눈에 띄도록 해야한다.
그래서 현재, 그러니까 2020년, 아이돌 그룹은 각자의 이름을 건 브랜드가 있다. 브랜드에 수반되는 네이밍과 로고타입도 존재한다. 아이돌 그룹이 많아야 세 개쯤 공존하던 시절에는 이들의 브랜딩이 아주 중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 해에 데뷔하는 아이돌만 백 개가 넘는 시점에는 이게 그들이 구사하는 음악만큼 중요해졌다. 수가 많아지자 경향성도 생겼다. 케이팝 열풍이 사그라지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은 지금 브랜딩, 그 중에서도 로고를 정리해보려 한다.
이름을 강조하기 - EXO, BLACKPINK, (여자)아이들
기업의 로고가 그러하듯 아이돌도 이름을 가장 기본적인 소스로 사용해 로고를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름을 로고 타입의 토대로 삼는 경우 타이포를 기본으로 인상적인 형태를 만들게 된다.
아이돌 브랜딩의 태초를 따지자면 H.O.T.로 거슬러 올라가야겠지만 이건 마치 동굴벽화까지 가져와 디자인의 시초를 따져보겠다는 얘기 같다. 현재의 ‘아이돌 브랜딩’을 누가 시작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컨셉이라는 단어를 ‘세계관’으로 바꿔버린 그룹인 EXO라고 하겠다.
SM 엔터테인먼트의 EXO는 ‘외계행성에서 온 초능력을 가진 외계인들이 모인 그룹’이 큰 컨셉이다.
그리고 여기에 적합한 로고를 가지고 데뷔한다. 민희진 아트디렉터와 정고운, 김기연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육각형의 형태는 그 당시 한 유닛 그룹당 여섯 명 씩인 멤버 수와 외계 행성이라는 컨셉에서 착안했다. 그러나 그보다 즉각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로고 속에 들어간 EXO라는 글자와 특이한 타이포다. 어릴 적 본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그들이 꼭 이런 글자를 썼던 것만 같다. 이 모든 시각적 요소가 그룹 EXO의 컨셉을 직접 알 수 있도록 한다.
YG 엔터테인먼트의 여자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는 이름만을 로고에 활용했다. 블랙핑크라는 그룹명은 ‘블랙 핑크는 가장 예쁜 색으로 표현 되는 핑크를 살짝 부정하는 의미로서 '예쁜 게 다가 아니다'라는 반전의 의미로서 담고 있다. 외모와 실력을 함께 겸비한 팀이라는 뜻’2) 이라고 한다. 이런 의미를 반영하듯 C와 N이 좌우로 반전되어 있다.
(여자)아이들은 CUBE 엔터테인먼트의 여자 아이돌 그룹이다. 로고 디자인에 그룹의 리더인 소연이 참여했다고 알려져있다.3) 이미지에서 위가 이 그룹의 로고인데, 영문 i와 한글 들을 합친 형태다. 얼핏 보면 알아채기 어려워 아래에 임의로 로고를 편집해보았다. 알고 나면 이 로고가 더욱 참신해 보인다. 영문과 한글의 형태를 합쳐 하나의 형태로 만들 수도 있다.
멤버 수를 강조하기 - GOT7, SF9, 구구단, DAY6, 뉴이스트
이들은 이름에서부터 멤버의 숫자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로고에도 숫자가 들어간다. 아래 차례대로, 한글명으로 갓세븐(JYP), 에스에프나인(FNC), 구구단(젤리피쉬), 데이식스(JYP)의 로고를 나열해보았다. 각 그룹의 멤버 수는 몇 명일까? 한번 찾아보자.
그렇다. 갓세븐은 7명, 에스에프나인과 구구단은 9명, 데이식스는 6명의 멤버로 데뷔했다. 현재 데이식스는 멤버의 탈퇴로 인해 5명으로 활동 중이다. 로고는 멤버 수가 바뀐 이후에 생겼지만 이름의 6은 그대로라 로고에도 반영되었다. 월간 디자인이 작성한 데이식스 로고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박영하 디자이너가 작업했다.
데이식스는 JYP 스튜디오 J 소속 아이돌 모던 록 밴드다. 데뷔한 지 3년이 지났지만, 공식적인 로고 없이 활동해온 데이식스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는 비주얼 아이덴티티가 필요했다. 숫자 6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파장 형태는 데이식스의 음악적 파장을 의미하면서 하루를 상징하는 시계의 시침이자 음표의 형태를 형상화한 것이다.4)
로고에 멤버 수를 활용했지만 이름에 숫자가 들어가지 않는 그룹이 있다. 뉴이스트는 서바이벌로 인해 한 멤버와 다른 네 멤버가 따로 활동해야했던 역사가 있다. 아이돌그룹에서 멤버 수의 유지는 핵심이고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 로고도 변화했다. 아래는 뉴이스트의 새 로고를 디자인한 폼앤펑션의 설명이다.
뉴이스트는 2012년 데뷔한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의 남성 아이돌 그룹입니다. 뉴이스트는 2019년 3월, 프로젝트 그룹 워너원으로 활동하던 민현의 복귀와 함께 새로운 완전체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폼앤펑션은 2019년 복귀 시점에 맞추어 뉴이스트의 새로운 브랜드 디자인을 진행했습니다.
뉴이스트, 영문명 NU’EST는 Nu Establish Style Tempo의 약자다. 이 단어들의 뜻이 새 로고 타입 디자인의 바탕이 된다. 이 ‘Tempo’가 다섯 개의 선으로 표현되는 데는 다시 다섯 명이 된 뉴이스트 멤버 수가 분명히 이유이다.
컨셉/구조를 강조하기 - 세븐틴, 워너원
아이돌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앞서 말했던 이름과 컨셉, 멤버 수도 있겠지만 가장 기초는 사람이다. 그룹 당 인원이 많아지고 구성원을 뽑는 방식이 다양해지며 이 멤버 구성 자체가 중요해진 그룹들이 있다. 그리고 이게 로고에도 드러난다.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의 남자 아이돌인 세븐틴은 멤버가 열일곱 명이어서 그룹명이 세븐틴이 아니다. 멤버는 열셋(13)인데 내부에 유닛이 세 개(3)가 있고 그게 합쳐져서 하나(1)의 그룹이 된다는 게 큰 구조적 컨셉이다. 13+3+1=17, 이 공식이 로고에 반영되었다. 아래는 오드하이픈의 작업이다.
자세히 보면 모양이 같은 세 개의 도형이 입체적으로, 안과 밖이 모호하게 얽혀있는 형태다. 한 도형은 하나의 유닛이겠다. 그게 모여 작은 역삼각형들과 커다란 역삼각형을 만들어낸다.
워너원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멤버가 뽑혀 그룹을 이루게 된 그룹이다. 그 중 1등에게는 아이돌에게 영광스러운 자리라 주입된 ‘센터’라는 포지션이 주어진다. 이렇게 뽑힌 멤버들은 한 소속사가 내부에서 조절한 게 아니다. 이렇게 인기순으로 세팅되면 아이돌 그룹 멤버 구성 특유의 균형감이 사라지는데(대개 아이돌 그룹은 키나 목소리, 얼굴 크기까지 고려해 한 팀으로 구성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모여 하나의 그룹이 되기를 원한다는 뜻도 있겠다. 아래의 로고는 김동규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1, 그리고 하나가 되겠다는 의미가 바로 보인다. 또한, 1에 사용된 점이 열한 개, 로고 타입에 사용된 직선의 수도 열한 개이다. 11은 이 그룹 멤버의 숫자이다. 인기투표의 1위부터 11위까지를 데뷔시키는 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최종 목표였다. 이 과정에서 11명의 멤버 수 역시 매우 중요한 기조가 된다.
변화, 확장 시키기 - EXO, 여자친구, 레드벨벳 / 몬스타엑스, BTS / NCT, 이달의 소녀
아이돌 그룹은 데뷔부터의 컨셉 단 하나만을 소화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일반 기업에 비해 로고를 바꾸는 게 자유롭다. 고려할 맥락이 단순한 데다 시각적인 훅이 있기만 하면 수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아이돌은 앨범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때에 적합한 로고로 바꿔나간다. 또한, 그룹 내에 서브그룹이 있어 로고 역시 확장해 나가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는 앨범마다 로고를 바꾸는 EXO다. 이 브랜딩을 총괄한 민희진 아트디렉터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엑소의 심볼을 브랜드 아이덴티티(BI) 개념으로 접근해 앨범마다 다양하게 변형하고 활용했던 사례’5).
EXO는 최근의 앨범까지도 새로운 로고를 내놓고 있다. 그리고 이를 음원의 대표 이미지로도 활용한다. 로고가 이렇게 많지만 우리는 바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맨 왼쪽 위에 놓인, 가장 처음의 엑소의 로고 속 E, X, O의 위치와 모양이 모든 로고에 들어가 있다.
비슷한 형태로는 소스뮤직(현재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내 레이블)의 여자친구가 있다. 이들 역시도 영문명인 GFRIEND에서 따온 G를 기본 구조로 두고 앨범 컨셉에 맞춰 로고를 변화시켰다. 여러 스튜디오와 디자이너가 로고를 작업했지만, 골격은 계속해서 유지된다.
초기의 세 앨범은 Sunshine Underground의 작품이다.
첫 정규앨범인 ‘LOL’의 로고는 TADA SEOUL의 최정은 디자이너가 작업했다.
이후의 앨범은 Like it Take it에서 작업했다.
EXO와 같은 SM 엔터테인먼트의 여자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 역시 앨범별로 로고가 변화하지만 기본 골격이 유지되지는 않는다. 그룹명인 Red Velvet만이 공통적으로 활용된다. 각 로고는 앨범 컨셉에 맞게 작업되었다.
앨범별로 변화시키겠다고 기획된 경우가 아님에도 로고를 바꾸는 경우가 있다. 데뷔 당시 만들었던 로고가 시간이 흐르며 동시대의 미감과 맞지 않거나 활동을 진행하다 보니 그룹 자체가 지향하는 바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이런 경우 로고를 리디자인 혹은 리브랜딩 하게 된다.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의 남자 아이돌 그룹 MONSTA X는 콘서트에서부터 로고를 변경해 가장 최근에 나온 앨범에까지 이를 반영했다. 고대 문양 같았던 로고와 아래의 타입이 현대적으로 바뀌었다. 그룹의 이름에서 비롯된 M과 X의 형태를 사용한 점은 동일하다. 새 로고 작업은 VB Studio에서 진행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남자 아이돌 그룹인 BTS의 한글명은 방탄소년단이다. 데뷔 당시 그들은 학교를 뛰쳐나가는, 자유분방한 소년들이 컨셉이었고 이 소년들이 자기를 무장하는 갑옷은 자작곡이었다. 활동을 진행하며 그들의 음악적 기조는 조금 더 크고 보편적인 방향이 되었다. ‘Love yourself’를 위시한 컨셉이 그것이다. 이 변화가 로고, 그리고 브랜딩에도 반영되었다. 아래는 BTS의 새 로고를 제작한 플러스엑스 신명섭 대표의 설명이다.
성장하는 BTS의 지향점을 담아 난관을 극복하고 도전하며 다음으로 계속 나아간다는 의미를 시각화한 BI 리뉴얼이 필요했다. 문을 형상화한 심벌을 중심으로 앨범, 콘서트, 제품 등 여러 측면에서 팬들이 경험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드는 것에 대해 거듭 고민했다.6)
그룹의 형태와 맞물려 로고가 확장되기도 한다. SM 엔터테인먼트의 남자 아이돌 그룹 NCT는 전체를 아우르는 그룹에서 서브그룹 - NCT U, NCT 127, NCT DREAM - 으로 나뉘는 형태이다. 기본 형태 뒤에 서브그룹의 이름을 붙여 로고를 만들었다.
NCT dream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의 여자 아이돌그룹인 이달의 소녀도 비슷하다. 이달의 소녀라는 가장 큰 그룹에 유닛으로 이달의 소녀 ⅓, 이달의 소녀 ODD EYE CIRCLE, 이달의 소녀 yyxy가 존재한다. 이들 역시 기본 로고 뒤에 유닛 그룹의 로고가 붙는다. yyxy만이 다른데 이는 그들의 ‘세계관' 때문일 것이다.
이달의소녀 ODD EYE CIRCLE
https://www.youtube.com/watch?v=3Q9hJBog8QI
이달의소녀 yyxy
또 하나 재밌는 점은 이들의 영문 로고에서 찾을 수 있다. 이달의 소녀의 영문명은 ‘달'을 변환한 LOONA이다. 그리고 이 알파벳의 형태를 역시 한글에서 가져온다. 니은, 디귿, 시옷, 이응을 절묘하게 알파벳으로 바꿔낸다.
뮤직비디오 초반의 모션 참고
정리하며
이외에도 아이돌의 로고를 제작하고 브랜딩을 하는 방법은 있겠다. 하지만 이것으로 큰 흐름은 짚을 수 있으리라 본다.
언제부턴가 아이돌 그룹에게 로고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 자체가 그들의 얼굴이 됨은 물론 여러 다른 형태 - 굿즈, 음원 커버 - 등에 사용되기도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그들의 음악처럼 그래픽도 앞서나가는, 참신한 형태인 경향도 있다.
아이돌은 노래 뿐 아니라 춤과 뮤직비디오, 로고 등이 모여야 하나의 결과물이 되는 종합적인 대중예술이다. 그런 아이돌 그룹들이 앞으로도 멋진 기획과 디자인으로 우리의, 그리고 나의 귀 뿐 아니라 눈까지 즐겁게 해주길 바라본다.
2.
YG 새 걸그룹, '블랙 핑크' 이름의 뜻은?[YG 새 걸그룹 최종발표③]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3347383
3.
어필하기 위해 PPT 발표까지 하는 소연, 로고까지 직접 만들었다고...?! https://tv.naver.com/v/10662876
5.
[음악계 우먼파워] ③SM엔터테인먼트 민희진 이사 https://www.yna.co.kr/view/AKR20180710146700005
글쓴이 김한희
월급날을 좋아하는 직장인.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하는 중이다. 페미니스트, 그리고 페미니스트 디자이너로서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잘 좋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탐구하던 찰나, FDSC를 만나 동력을 얻고 있다.
책임편집. 최지영
편집. 김나영, 노윤재, 김현중, 이예연, 하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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