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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언트가 알아야 할, 디자이너와 잘 소통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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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SC ARTICLE
디자이너는 종종 클라이언트와 비효율적인 소통을 하느라 시간을 소모한다. 디자인은 감각과 경험에 밀접한 분야기에 회계나 법 등과 같이 명료하게 약속된 체계가 있는 분야보다야 말이나 글로의 표현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디자이너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필요한 언어와 소통하는 문법이 있다. 디자이너와 협업할 때 이를 알고 진행한다면 훨씬 더 매끄럽고 정확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더 좋은 디자인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디자인의 세부 분야나 개인에 따라서 사소한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해당하는 내용들을 적어본다.

01. 준비됐나요?

아래 사항들은 디자인 프로젝트에 있어서, 여행 짐을 쌀 때 꼭 챙기는 세면도구나 속옷과도 같이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것들이다. 이것들을 명료하게 제시하면 디자이너가 프로젝트의 내용과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노동의 양과 강도를 예상하여 견적을 책정할 수 있다.
1.
개요 프로젝트의 제목, 그리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배경이나 이유, 목표와 목적을 명시한다.
2.
과업 범위 진행하게 될 과업(매체, 상품 등)의 종류, 최종 결과물의 유형, 수량, 분량 등을 최대한 자세하게 제시한다.
(예) [웹플라이어] 크기: 1200*1200px 1종, 1080*1920px 1종 - 총 2종 | 형식: jpg 혹은 png 형식 [리플렛] 판형: 자유 | 내용: 이미지 1개 들어가고 나머지는 텍스트 위주, 국/영문, A4 2장 분량의 원고, 이미지 1개 | 제작 방식: 8p 접지 혹은 중철 제본 (조정 가능) | 인도물의 형식: 인쇄물 500부
3.
대상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전달될 대상, 즉 목표로 하는 주요 사용자나 고객이 누구인지 명시한다. 구체적일수록 디자이너가 프로젝트의 성격과 방향을 쉽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예 1) 새로운 문화 활동을 직접 리서치하고 경험하고 소셜미디어로 전시하는 것을 즐기는 20대 후반 여성 혹은 구체적인 가상(혹은 실제) 인물 즉 ‘페르소나’를 설정해보는 것도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 (예 2) 재테크에 관심이 많아 유튜브를 통해 조금씩 공부하고 있는 성복동에 사는 29세 마케터 김은지 씨
4.
일정 착수 일정, 시안 일정, 내부 중간보고 일정, 마감 일정 등 주요 일정을 밝힌다.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상태라면 대략적인 범위로 이야기한다.
(예) • 포스터 : 8월 22일 착수 / 9월 14일 시안 / 9월 22일 납품 • 리플렛 : 9월 14일 착수(원고 전달) / 9월 28일 시안 / 10월 7일 납품 • 도록 : 10월 7일 착수(원고 전달) / 10월 21일 시안 / 11월 15일 납품(11월 안에 납품 완료되는 한 일정 협의 가능)
5.
예산 가용 예산 혹은 고려했던 금액을 먼저 제시할 경우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디자인 예산뿐 아니라 제작비에 할당된 예산도 함께 알려준다면 디자이너가 그 제작 단가에 맞추어 디자인을 진행하는 데 수월하다. 가령 제작비 예산이 넉넉한 경우에 디자이너가 그 예산에 맞는 효율·효과적인 후가공을 진행할 수 있다.
6.
기타 요구 사항 및 제약 조건정해진 규격이나 특별하게 원하는 표현 방식/소재/매체 등이 있을 경우, 꼭 명시해준다.
(예) ‘이후에 시리즈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으니, 이번에 결과물을 기본형으로 삼아 변주될 경우를 고려해서 기획해주시기 바랍니다.’(참고로 이 예시와 같은 경우, 기본 포맷 디자인도 하게 되는 셈이니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
만약 위 사항들을 작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뭔가 정해지지 않았다면? 때가 이르다. 우선 이메일 창을 닫고, 디자이너가 과업에 대해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으로 기획을 해서 다시 문을 두드리기 바란다.
제목 등 중요한 내용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면 꼭 사전에 이야기해 두어야 한다. 협의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어느 정도까지 협의가 가능한지 그 범위를 제시해 주면 더 빠르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더 추가적인 내용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출판 디자인의 경우 출판물의 제목, 글쓴이, 목차, 기획안이 기본적으로 포함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샘플 원고가 포함될 수 있다. 브랜드 디자인의 경우 새로운 브랜드인지 기존 브랜드를 리뉴얼하는 것인지에 따라서도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2. 견적을 깎을 때 퀄리티도 깎인다

싸고 빠르고 좋은 디자인은 없다. 디자이너는 마법사도 아니고, 자선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디자인을 빨리 얻고 싶다면 디자이너에게 돈을 더 지불해야 하고, 급한데 예산이 없다면 디자인 퀄리티에 대한 기대는 일단 접어두기를 권한다.
그렇다면 디자인 보수 금액을 낮추면서도, 디자이너에게 실례를 덜 범하면서, 디자인 결과물은 일정 이상의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가용 예산 하에서 다른 요소들을 조정하여 디자인 퀄리티는 최대한 지키는 방법을 알아보자.
디자이너 조직 규모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조직의 규모가 작을수록 보수 금액이 내려가는 경향이 있다. 디자인을 수행하는 조직의 규모가 크면 여러 가지 리스크가 줄어들고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대신에 높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에이전시(중·대규모 조직) → 스튜디오(소규모 조직) → 독립 스튜디오·프리랜스 디자이너 순으로 금액이 낮아진다. 프로젝트의 예산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면 독립 스튜디오 및 프리랜스 디자이너를 고려해보는 것도 좋다.
일정
일정이 촉박한 프로젝트를 의뢰하고자 한다면 디자이너는 초과 근무를 각오해야 하며 빠른 지적 노동과 손을 요한다. 때문에 일정이 급하다면 그만큼 합당한 급행료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반대로, 디자이너가 여유를 가지고 진행할 수 있도록 일정 계획 수립을 디자이너에게 맡기는 조건으로 소정의 감액 협상이 가능할지도 모른다.(하지만 기간이 넉넉하다고 해서 가격이 파격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작업이 한도 끝도 없이 물고 늘어지면 나름대로 노동이 들어가고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원본 데이터 인계 여부 
디자인 원본 데이터(ai, indd, psd 등)를 고객사에 제공하는 것은 기본 사항이 아니므로 필요시 미리 협의하고 계약에 명시해야 한다. 원본 데이터는 디자이너 고유의 기술과 노하우가 포함된 자료이므로 최종 결과물과는 별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지적 자산이기에 무작정 요구하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무례한 일이다. 또한 디자이너는 고객사 측에서 원본 데이터를 이용해 합의 없이 임의로 변형하여 사용될 경우를 우려한다. 원본 데이터가 필요하다면 작업에 착수하기 이전에 추후 수정·변형 범위에 대한 협의를 하고 합당한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인계받도록 한다.
디자인 시안의 개수는 미리 논의하는 것이 좋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2-3종 정도의 시안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받아본 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재시안을 진행할 때는 시안비가 추가된다. 또 시안에서 방향성이 달라지는 수정은 단순 수정이 아닌 재시안으로 간주되어 시안비가 추가될 수 있다. 반대로 시안의 수를 적게 조정할 수도 있다. 즉, 시안을 일반적인 경우처럼 2–3개 보지 않고, 디자이너가 선별적으로 개발한 1종의 시안만 진행해 견적을 낮추는 경우도 있다.
시안의 수량뿐 아니라 결과물의 분량 조절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리플렛 디자인을 진행할 때 견적가에 비해 가용 예산이 낮은 경우, 리플렛에 들어갈 내용의 분량을 줄여 페이지 수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견적 금액 협상을 시도해볼 수 있다.
예산을 확충할 수도 없고, 양을 줄일 수도 없고, 납기일을 늦출 수도 없다면? 디자인 퀄리티에 대한 욕심은 어느 정도 내려놓자.

3. 좋은 콘텐츠에 좋은 디자인이 깃든다

“너무 무서워요.”
팟캐스트 ‘디자인FM’ 워크스 편(시즌1 3화 https://soundcloud.com/designfm/s1e3)에서 이연정 디자이너는 더미 텍스트에 대해 위와 같이 말했다(더미 텍스트 혹은 채우기 텍스트란 출판이나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타이포그래피, 레이아웃 같은 시각적 연출을 보여주기 위해 내용을 채우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은 글자들을 말한다). 디자이너에게 불안정한 콘텐츠를 가지고 디자인을 해달라는 요구는 언제 뒤집히고 가라앉을 줄 모르는, 구멍 뚫리고 헐거운 뗏목을 타라고 등 떠미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다.
만약 문안·원고가 초안 수준으로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면 디자인 착수가 어렵고 억지로 진행하더라도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디자인의 콘셉트와 디테일이 콘텐츠에 맞추어 최적화되기 때문에 주요 문안이 변경될 경우 글자 수, 단어 수가 달라짐에 따라 안정적이던 밸런스가 깨지고 어색해질 수 있다. 때문에 전체를 뜯어고쳐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게 되느니 디자인 착수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확정된 문안에 집중해서 진행하는 게 더 나은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다.
조직 내부에서 완성도 있는 내용을 기획하고 작성 및 편집할 수 없다면 카피라이터, 작가, 편집자를 아웃소싱 하는 것을 추천한다. 혹은 디자이너가 내용 기획과 편집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기를 바라는 경우에는 디자이너에게 합당한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원고 교정·교열은 필수다. 오탈자와 틀린 맞춤법이 없도록 검토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덜 익거나 상한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없듯이 준비되지 않은 콘텐츠로는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없다.

4. 피드백은 ‘어떻게’가 아니라 ‘왜’

디자인에 있어 전문가는 디자이너임을 기억하자. 자신이 판단한 구체적 해결책을 자세한 배경 설명 없이 디자이너에게 요구할 경우, 결과물이 생각보다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다짜고짜 자신이 판단한 해결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바가 있을 때는 그렇게 생각하게 된 맥락, 의도, 근거에 집중해서 설명하고, 그에 대한 해답에 대한 최종 결정은 디자이너에게 맡기는 편을 권한다. 클라이언트의 필요를 해석하고 종합하여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게 바로 디자이너가 하는 일 아니겠는가. 디자이너는 당신보다 더 좋은 해답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신은 아래에서 어떤 타입에 해당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개선하면 소통의 질을 높일 수 있는지 알아보자.
A. 입으로 디자인하는 타입 근거 없이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경우 “◆◆ 부분의 크기를 더 키워주세요.”
→ ‘어떻게’ 말고 ‘왜’를 말하자 “◆◆ 부분은 ▤▤과 다른 위계의 내용이기 때문에 분리되면 좋겠습니다.”
B. 막무가내 타입 근거나 방향이 없이 주관적 취향이 개입하는 경우 “폰트가 맘에 들지 않습니다. 다른 폰트로 바꾸는 게 좋겠습니다.”
→ 취향 말고 방향을 말하자 “저희 고객은 40–50대가 많기 때문에 노안이 많습니다. 조금 더 판독하기 쉬운 서체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C. 망망대해 타입 근거나 구체적 배경 설명 없이 막연한 요구를 하는 경우 “좀 더 간결하고 깔끔하게 수정 부탁드립니다.”
→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자 “이 패턴을 너무 빈번하게 사용하면 피로도가 높아 고객이 쉽게 질려할까 우려됩니다.”
맥락과 근거를 설명하기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아래의 예시처럼 스스로에게 ‘왜’를 세 번만 질문해보자.
(예) ‘■■의 색을 바꾸면 좋겠다.’ → 왜? ‘■■이 강조되었으면 좋겠다.’ → 왜? ‘■■은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 왜? ‘▲▲를 설명해주는 요소가 ■■ 밖에 없다.’
이 경우, ‘왜’를 세 번 물어 나온 근거를 가지고 디자이너와 상의를 한다면 ■■의 색을 변경하는 방법 외에도 ▲▲가 드러나는 그래픽 요소를 추가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5. 검토는 신중하게 전달은 깔끔하게

한번 결정되었던 것이 나중에 번복이 된다면 디자인 업무가 가중된다. 이에 따라 비용이 추가될 수 있고 오류 및 인쇄 사고가 발생하기 십상이다. 이 같은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검토와 결정은 신중하게 하도록 하자. 또 여러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다를 경우에, 다양한 내용의 의견을 디자이너에게 여과 없이 전달하면 혼선이 생겨 프로젝트가 산으로 갈 수가 있다. 내부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을 먼저 거치고 종합하여 디자이너에게 전달하도록 한다.
최종 결정권자의 권한이 매우 센 경우에는 최종 결정권자의 의견을 처음부터 반영할 수 있도록 한다. 결정권자로 인해 도중에 뒤집혀 다시 작업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만약 이런저런 이유로 재작업을 하게 된다면 비용과 일정이 그만큼 추가되므로 처음부터 결정은 신중하게 한다. 그리고 나중에 서로 다른 말을 하지 않도록 결정된 내용에 대해 서로 잘 확인하고 숙지하도록 한다.
수정 요청은 한꺼번에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이 좋다. 여러 번에 걸쳐 산발적으로 전달하다 보면 이해를 잘못하거나 일부를 놓치는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너무 다양한 채널로 소통하는 것을 지양한다. 또한 수정을 너무 여러 차례 거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혼선과 사고를 방지하는 길이다.
Tip 1
디자인 인도물 파일 형식이 PDF인 경우 수정할 내용을 정리해서 전달할 때 PDF 상에서 주석(comment) 기능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지시하는 내용과 위치를 명확히 표시할 수 있어서 이해가 빠르다. 원고 수정 부분은 텍스트를 바로 복사할 수 있어서 편리하며, 주석 작성 및 수정 내역을 확인할 수 있고 여러 명의 코멘트 작성자도 구분된다는 장점이 있다.
Tip 2
미팅이나 전화를 통해 구두로 이야기한 것 중, 중요한 내용은 정리하여 이메일 등을 통해 서면 기록으로 명시하고 서로 정확하게 이해한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세부 사항을 놓치지 않고, 추후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기 위함이다.
글쓴이 우유니게
1인 스튜디오 ‘O–O–H’와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에서 디자인하고 운영한다.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 열심회원이다. www.o-o-h.net
책임편집. 김현중
편집. 최지영, 노윤재, 김나영, 이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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