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넷플릭스 디자인 어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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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SC FOCUS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발견한 매력적인 디자인 요소를 소개합니다.

텔레비전 없이 지낸 자취방의 역사와 함께 나를 즐겁게 해 줄 콘텐츠를 끊임없이 찾아다녔고 넷플릭스는 가장 오래된 친구가 되었다. 특히 오리지널 시리즈를 좋아해 웬만한 건 다 섭렵했다. 넷플릭스를 볼 때면 직업인 ‘디자이너’의 태도를 굳이 꺼내 놓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각물에 예민한 시청자'로서 시선을 뺏는 매력적인 요소들을 발견하곤 한다. 타이포그래피, 모션 그래픽, 영상 등에서 너무나 공들여 뽑아낸 비주얼을 감상할 때면 창작가의 힘듦이 느껴져 즐거우면서도 어떨 땐 그 노고가 공감돼 괴롭기까지 하다.
작년 한 해도 많은 넷플릭스 시리즈를 정주행 했다. 그리고 드라마의 매력적인 타이틀 타이포그래피와 오프닝 비디오는 재생 버튼을 누르는 마음을 더 설레게 했다. 나만 보기 아까워 ‘내 맘대로 넷플릭스 디자인 어워드’를 열어봤으니 모든 디자이너 - 넷플릭스 덕후들과 함께 선정작들을 감상하고 싶다.
(스포 없으니 안심하고 읽어 주세요!)

드라마와 찰떡! 타이틀 타이포그래피상

넷플릭스 드라마도 외화가 한국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영문 원제가 한국어로 번역되곤 한다. 그리고 사전 그대로의 직역보단 그 나라의 문화나 유행에 맞추어 제목을 바꾼다. 드라마 타이틀의 타이포그래피 디자인도 비슷하다. 웹사이트 상의 썸네일이나 오프닝 영상에 등장하는 원제의 로고타입은 한글 로고타입과 다르다. 그리고 ‘시각물에 예민한 시청자'로서 서로 다른 디자인을 보는 묘미가 있다. 그중 작년 한 해 재밌게 본 <Russian Doll 러시아 인형처럼>과 <Stranger Things 기묘한 이야기>에 ‘찰떡 타이틀 타이포그래피’ 상을 주고 싶다.
Russian Doll 러시아 인형처럼
〈러시아 인형처럼〉은 유명한 넷플릭스 시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던 나타샤 리온(Natasha Lyonne) 주연의 미스터리물 드라마다. 주인공 나디아는 자신의 생일파티를 시작으로 의문의 죽음을 반복하게 되고, 이어지는 서사를 통해 그 이유가 점점 드러난다.
사실 ‘이 글을 써야겠다.’라고 다짐 하자마자 바로 선정한 로고타입이 ‘Russian Doll’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중에 이렇게 드라마의 색감과 잘 어울리는 로고타입이 또 있나 싶다. <러시아 인형처럼>은 검은색과 붉은색 두 가지의 상징적인 색감이 뚜렷하다. 우선 검은색은 공간적인 배경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매 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어두운 조명의 생일파티장 외에도 밤거리나, 어두운 복도에서 줄곧 검은 색감을 볼 수 있다. 또,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인 ‘죽음'은 주인공이 흘리는 ‘피'의 색상인 붉은색으로 대변된다. 검고 붉은 색상이 주는 으스스하면서도 미스터리한 느낌이 타이포그래피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Russian Doll의 타이틀은 매 에피소드마다 오프닝에서 오렌지나 블루 같은 다양한 계열의 변형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역시 가장 드라마를 잘 나타내는 건 기본형인 붉은 색상의 디자인이다. 특히 어두운 배경 위에 올라갈 때 그 매력은 200% 표현된다.
‘Linotype’ 에서 제작한 Macbeth 폰트
Macbeth 폰트로 Russian Doll을 그대로 타이핑한 모습
<Russian Doll>의 로고타입은 ‘Macbeth’라는 서체를 변형한 것이다. 로고타입의 ‘A’와 ‘R’을 보면 기존 서체에서 Tail(서체의 하강하는 획, 주로 장식적으로 표현)을 많이 정돈했다.
Macbeth는 강한 무게감이 있는 고풍스러운 서체이다. ‘Linotype’이라는 전통 있는 타이포그래피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졌다. Linotype의 홈페이지의 Macbeth의 소개에서 재밌는 문장을 보았는데, 번역하자면 “Macbeth는 20세기 초를 연상시키며, 으스스한 분위기의 음악 관련 애플리케이션에 사용해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비운의 천재 작곡가의 삶을 다룬 뮤지컬의 타이틀이어도 멋질 것 같다.
<러시아 인형처럼>이라는 제목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의 주요 메타포는 러시아의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이다. 마트료시카는 뚜껑을 벗기면 작은 인형이 계속 나오는 인형인데, 드라마에서 주인공 나디아가 죽어도 죽어도 계속해서 다시 살아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Macbeth가 가진 고전적인 느낌은 마트료시카라는 전통적인 소재와도 역시 잘 어울린다. 그리고 마트료시카는 인형 저마다 고유한 문양과 색상을 가졌는데, 이 또한 곡선과 화려한 장식성을 자랑하는 아르 데코 양식을 닮은 Macbeth와 찰떡이니 상을 안 줄 수가 없다!
Macbeth
Designed by : Linotype Design Studio
Stranger Things 기묘한 이야기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넷플릭스를 본 사람이라면 <기묘한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차원'과 ‘초능력'을 주요 키워드로 처음부터 끝까지 말 그대로 기묘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드라마다.
원제인 ‘Stranger Things’의 로고타입은 드라마만큼 인상적이다. 날카롭게 오려낸 듯한 세리프가 앞서 소개한 ‘Russian Doll’의 로고타입처럼 붉은, 검은색과 어울려 강렬한 느낌을 준다. 드라마를 몇 번만 봐도 금방 기억할 것이다.
이 로고타입은 ‘ITC Benguiat’이란 서체로 디자인되었다. ITC Benguiat은 미국의 타이포그래퍼 ‘Ed Benguiat’이 디자인한 서체이다. ITC Benguiat은 'Stranger Things 폰트' 로도 유명하지만, 사실 그동안 유구하게 여러 예술 작품에서 즐겨 쓰인 서체이다. 특히 공포 영화나 추리 소설 같은 장르에서 사랑받았다.
호러 무비 <Flowers in the Attic, 1987>의 타이틀 타이포그래피에 쓰인 Benguit (이미지 출처 : https://fontmeme.com/flowers-in-the-attic-font/)
Stranger Things 로고타입은 앞서 소개한 Russian Doll처럼 붉은색, 검은색과 어우러져 으스스한 느낌이 나는 디자인이 드라마와 잘 어울린다. 뜯어보면 ‘STRANGER THINGS’라는 문장에서 ‘S’와 ‘R’의 크기를 키워 일부러 Baseline(글자들이 고르게 놓인 것처럼 보이는 선을 기준선)을 맞추지 않은 점이 리듬감을 준다. 그리고 이 리듬감은 오프닝 영상 속에서 표현되는 부유하는 움직임과 같이 봤을 때 더 잘 와 닿으니 꼭 한번 보길 바란다.
오프닝 : Stranger Things | Title Sequence [HD] | Netflix
ITC Benguiat Std Bold로 그대로 타이핑해보았다.
하지만 역시 이 로고타입의 진짜 매력 포인트는 가는 아웃라인의 획만 남기고 활자의 면을 뚫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묵직함이 느껴지는 볼드한 서체의 가운데를 뚫어버리니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듯한 아슬아슬한 느낌이 난다. 그리고 그 느낌은 드라마 내내 흐르는 긴장감과 맞아떨어진다. 게다가 좁은 자간 또한 이 긴장감에 한몫한다. Stranger Things 로고타입 자체도 아름답지만 드라마의 내용과 성격을 완벽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역시 찰떡 타이포그래피상을 수여한다.
ITC Benguiat
Designed by : Ed Benguiat
Published by : ITC

드라마에 녹아든 유행 - 글로벌 트렌드상

Maniac 매니악
<매니악은>2018년 9월에 첫 공개 되었던 드라마다.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이 드라마를 본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엠마 스톤(Emma Stone)이 주연인 점에 비해 우리나라에선 인지도가 낮은 것 같다. 영화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을 기억한다면 <매니악>에선 상당히 우울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매니악>은 여러모로 독특한 드라마다. 우선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지 콕 집어 말하기 힘들다. 엄청나게 기술이 발전된 미래 같아 보이기도 하면서 드라마의 주요 공간인 ‘실험실’이 풍기는 레트로한 색감 때문에 과거의 느낌도 든다. 실험실은 채도 높은 분홍, 초록 계열의 강한 네온 색상으로 차있다. 네온 빛깔들은 실험실 벽을 꽉 채운 거대한 컴퓨터나 실험기계들이 가진 메탈 텍스쳐와 부딪히며 더욱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요 배경이 가진 높은 채도에 비해 드라마를 차지하고 있는 정서는 굉장히 우울하고 정적이라는 점은 재밌는 대비이다.
<매니악>을 보는 내내 베이퍼 웨이브(vaporwave)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베이퍼 웨이브라는 단어를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면 ‘인터넷 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80년대와 90년대의 대량 생산에 의한 대중문화에 대한 향수를 반영하는 복고풍 음악으로 특징된다.’라는 설명이 나온다. 최근 몇년 간은 ‘힙하다.’고 일컫는, 거칠고 어딘가 엉성해 보이지만 ‘결국은 쿨한’ 그래픽들도 다 베이퍼웨이브 문화의 일종으로 설명할 수 있다.
등장인물의 패션에도 복고적인 느낌이 묻어난다(안경을 보라..!).
기존에 음악에서 앨범 커버나 뮤직 비디오, 혹은 음악 자체에서 느껴지는 복고적인 리듬감, 그래픽 디자인에서 볼 수 있는 재밌는 시도들, 가장 최근에는 ‘온라인 탑골공원' 같은 재밌는 사회문화적인 현상까지. 지칠 줄 모르는 레트로, 뉴트로 열풍을 넷플릭스 드라마에서도 마주하니 과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글로벌 트렌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베이퍼 웨이브가 아주 취향인 디자이너 중 1인으로서 넷플릭스 <매니악>에 사심으로 글로벌 트렌드 상을 수여한다.
IBM의 로고
‘Maniac’의 로고타입도 역시 베이퍼 웨이브 느낌을 담고 있다. 가로 스트라이프가 매니악이 가진 사이버 분위기를 더한다. 리서치를 하다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Maniac의 디자인이 IBM사의 로고타입과 닮았다는 것이다. 사실 Maniac에서 내용상 '컴퓨터'가 중요한 오브제로 나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디자이너가 IBM의 로고를 패러디했다는 건 꽤 그럴싸하게 들린다. 서체는 구글링 해보니 ‘Rockwell’로 나오는데 무게감이나 서체의 기둥, ‘A’의 세리프 장식이 일치하진 않아 Rockwell을 변환하여 디자인했거나, 직접 만든 로고타입일 거라 추측한다.
Rockwell Bold 폰트로 타이핑해본 MANIAC.
베이퍼웨이브 이미지들

‘건너뛸 수 없는’ 오프닝 크레딧상

넷플릭스를 열심히 정주행 하다 보면 1초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자연스레 [오프닝 건너뛰기]를 누른다. 그런데 건너 뛸 수 없는, 눈을 사로잡는 오프닝 크레딧도 있다.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를 1분 안에 표현하는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Tuca & Bertie 투카 앤 버티
‘건너뛸 수 없는' 오프닝 크레딧상은 먼저 <투카 앤 버티>에게 주고 싶다. 이 드라마의 오프닝은 정신 없이 바뀌는 컷들 사이 사이의 주인공들의 역동적인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또, 가슴이 달린 빌딩(!)이나 도개교 아래를 지나가는 집채만 한 거북이 같은 독특한 오브제들이 등장한다. 배경 음악은 꿱꿱거리는 사운드와 함께 ‘tuca and bertie!’를 무한 반복한다.
그런데 이 정신없는 오프닝이 전혀 오바가 아닌 것이 내용도 딱 그렇다. 투카와 버티는 시끄럽고 정신없으며 오프닝 속 걸음걸이에서 볼 수 있듯이 씩씩하다. 오프닝이 캐릭터의 매력을 잘 살려준다. 오프닝 자체가 하나의 코미디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투카 앤 버티>는 애니메이션 자체의 퀄리티가 매우 높아 디자이너+여자인 친구가 "요새 넷플릭스에서 볼 게 없다." 고 하면 만만하게 추천한다. 새의 머리를 하긴 했는데 여성이라 해야 할지 암컷이라 해야할지(?) 물음표가 뜨는 주인공들을 보고 있으면 '상상력이 뛰어나다.'라는 말은 이럴 때 하는 거구나, 싶다. 한 에피소드당 20분가량으로 짧아서 저녁 먹으며 가볍게 한 편 볼 수 있다. 하지만 짧은 길이 안에 담고 있는 메시지는 가볍지만은 않은 블랙 코미디다.
Created by : Lisa Hanawalt
Orange Is the New Black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건너뛸 수 없는' 오프닝 크레딧상의 두 번째 주인공은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이다. <오렌지 이즈 더 뉴블랙>은 은 연방 여성 교도소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재소자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이 따로 있긴 하지만 에피소드마다 모든 등장 인물 각각의 전사를 골고루 다루고 있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오프닝 크레딧은 그동안 넷플릭스에서 본 수많은 오프닝 중에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를 짧은 시간에 가장 잘 표현한다. 오프닝이 마치 모션 포스터 같다. 메인 테마 음악인 ‘You’ve got time’이 나오면서 등장인물들의 눈과 입이 지나간다. 얼굴을 다 보여주지도 않지만 눈과 입만 봐도 평탄한 삶을 살아온 느낌은 아니다. 또, 흔히 사회와 미디어에서 정의하는 ‘여성’의 모습이 아닌 그냥 ‘사람’'의 모습에 가깝다. 드라마가 담고 있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등장인물들이 개개인을 삶의 주인공으로서 어떤 고유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지를 비춘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왜 오프닝을 이렇게 연출했는지 이해가 되면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Created by : Jenji Kohan
학부 시절 한 교수님에게서 “디자이너가 되면 평생 남들은 아무렇지 않은 것들을 보면서 괴로워하는 저주에 걸리게 된다.”라는 말을 들었던 게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이 말은 동시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들에 예민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뜻도 되지 않겠는가!
디자이너의 눈을 가진 시청자라면 공감할 것이다. 영상물을 감상할 때면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껴지는, 디자인에서 오는 즐거움이 존재한다. 포스터부터 시작해, 타이틀 로고타입, 계획된 소품들의 배치, 절묘하게 스치는 배경의 그래픽, 주인공이 입은 옷의 애니메이션 텍스쳐 표현, 놀라운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사운드 디자인까지. 세상에 공들여 태어난 것들을 보고야 만다. 그야말로 소소하면서도 확실한 행복이다.
지난해 나를 즐겁게 해 준 넷플릭스 드라마를 비롯해 많은 콘텐츠 속 빛나는 디자인을 만들어낸 디자이너들의 노고를 기리며, 새해도 세상 곳곳의 멋진 디자인에 예민하게 행복할 수 있는 해가 되길 기대한다.
글쓴이. 유다정
좋은 서비스를 디자인해 세상을 더 낫게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 IT 스타트업 스포카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한다. 배워서 남 주기를 좋아해 디자이너로서 일하며 배운 것들을 기록으로 남긴다.
책임편집. 김나영
편집. 최지영, 노윤재, 김현중, 이예연
FDSC에서 발행한 다양한 글이 보고 싶다면!